과표 3000억 원 이상 법인세 최고세율을 5년 전 수준인 22%로 원상 복귀시키자는 정부 세법개정안이 연일 논쟁이 되고 있다. 민간 주도의 역동적 경제를 뒷받침하고자 하는 정부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법인세 인하 당위성을 강조하지만 국회 다수당인 야당은 부자 감세를 이유로 반대한다. 기업의 투자·고용 증대로 국민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정부의 낙수 효과 주장도 야당은 MB정부 경험을 들어 거부한다. 중요한 세금 정책에 대한 견해차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글로벌 경제 체제 재편에 대한 몰이해 속에 해묵은 피상적 논리와 편협한 주장이 과거의 소모적 논쟁을 재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코로나19를 전후로 세계 경제구조와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모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대표적 기업들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재정립은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 경제 복합 위기 극복과 신경제 질서 편입이 국가적 과업으로 부상한 현실에서 법인세 정책 역시 사고 전환을 통해 과거의 틀을 버리고 새롭게 접근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대규모로 제공된 유동성과 자산 시장 활황으로 대기업 주식에 대한 개인의 직접적인 투자나 연기금을 통한 간접투자가 크게 증가한 상황에서 법인세 인하의 일차적인 혜택은 중산층에도 상당 부분 돌아간다. 대표적으로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법률 개정이 이뤄졌던 2017년에 14만 명에 불과했던 삼성전자 보통주 소액주주는 현재 550만 명에 이른다. 국민 아홉 명 중 한 명이 국내 최대 기업에 소액이라도 투자하고 있는데도 대기업 법인세 인하가 단순히 부자 감세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퇴행적 사고와 다름없다.
신냉전 구도하에서 글로벌 공급망이 급속히 블록화하고 경제 동맹 체제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초격차 기술 전쟁의 핵심 자산 확보 여부에 각국의 명운이 달려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국제무대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반도체·전기차·2차전지 분야는 경제안보 시대의 핵심 전략 산업이다. 최근 미국이 삼성전자와 현대차·LG화학 공장 유치에 기꺼이 수조 원의 세금 감면과 재정 지원을 약속한 것은 단순한 경제 활성화 효과 때문이 아니다. 전략 산업 분야의 선도 기술 확보가 글로벌 기술 전쟁에서 미국의 패권국 지위 유지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경제 현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율 원상 복귀를 철 지난 낙수 효과 논쟁으로 점철하는 우리나라의 세태는 집단적 인지 부조화에 가깝다. 삼성전자가 5월 미국 텍사스 주 정부에 조용히 제출한 250조 원대의 투자 계획대로 국가전략산업의 전초기지가 국외로 이동한 후에야 어리석음을 자책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2020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2018년부터 70조 원 초반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던 우리나라 법인세 세수가 올해 104조 원대로 크게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세수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를 훌쩍 넘어 5%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된다. 누가 보더라도 이 같은 법인세 부담은 경제 규모에 비해 과중한 수준이다. 명목세율 기준으로도 우리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OECD 평균 수준을 4%포인트 정도 상회하기에 이번 세법개정안의 세율 인하는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 최고세율 인하가 정부 예측대로 세수를 4조 원 정도 감소시키는 것에 머무른다면 재정에 주는 압박은 그리 크지 않다. 반면 고금리 정책으로 상승한 기업의 비용 부담을 세금 경감을 통해 상쇄해줌으로써 경기 둔화의 불안 심리를 안정화하는 시기적 장점도 있다. 다만 세금 인하의 투자 증대 효과는 정부의 규제 완화를 통해서만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