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터키 먹튀 악몽 되풀이 않겠다"…폴란드 'K-무기 계약' 발표에도 신중한 尹정부

폴란드 국방부 27일 한국무기 구매 예고

"대규모 기술이전, 폴란드업체 제조"주장

K2 980대, K9 648문 2단계 걸쳐 도입

FA-50 개량형도 48대도 도입 계약 예고

韓 "최종계약 아닌 총괄합의서" 신중론

방사청 "보도자료 배포 계획 없다" 설명

가격, 기술이전 등 조건 최종조율 중인듯

기술유출, 대금 체납사태 방지장치 필요

튀르키예 정부가 터키 국명이었던 시절 기술을 수입한 대한민국 ‘K2 흑표’ 전차의 기동 장면. /사진제공 현대로템튀르키예 정부가 터키 국명이었던 시절 기술을 수입한 대한민국 ‘K2 흑표’ 전차의 기동 장면. /사진제공 현대로템




튀르키예가 제작한 ‘알타이’ 전차의 이미지. 우리나라 K2전차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된 탓에 K2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외형이 흡사하다. /사진제공=BMC튀르키예가 제작한 ‘알타이’ 전차의 이미지. 우리나라 K2전차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된 탓에 K2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외형이 흡사하다. /사진제공=BMC


폴란드 국방부가 27일(현지시간) 한국 무기의 대규모 구매계약 추진 방침을 공개했다. 다만 우리 정부는 해당 건이 최종계약이 아니고 계약에 이르기 위한 ‘중간단계’형태의 합의서 수준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종계약은 향후 가격, 기술이전, 생산방식 등에 대해 한·폴란드간 추가 조율 후에나 이뤄질 전망이다.



폴란드의 의욕적인 언론플레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와 방산업계가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은 협상막판까지 최대한 사업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앞서 우리 방사청과 방산업계는 과거 터키(현재의 ‘튀르키예’) 정부‘의 'K2전차 기술 먹튀 논란’, ’인도네시아 KF-21 분담금 연체 논란'과 같은 악몽을 경험했기 때문에 현 정부에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의미로 해석된다.

윤석열 대통령이지난 6월 29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방위산업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양국은 해당 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무기의 폴란드 수출 관련 협상을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대통령실윤석열 대통령이지난 6월 29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방위산업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양국은 해당 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무기의 폴란드 수출 관련 협상을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대통령실


그래픽제공=연합뉴스그래픽제공=연합뉴스


폴란드 국방부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 정부와 K2전차, K9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 무기주문에 대한 계약 방침을 밝혔다. 폴란드 국방부가 이날 공개한 무기 도입 계획 물량은 K2전차 980대 이상, K9자주포 648문 이상, FA-50경공격기 48대다. 폴란드 국방부는 이번 계약의 특징이 '폴란드로의 대규모 기술 이전’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자국의 방산업계가 폭 넓게 참여해 이번 도입 무기들의 제작에 참여하게 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폴란드가 일방적으로 계약 추진 사항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우리측으로부터 조기에 최종 계약을 이끌어 내려는 압박전술 차원의 언론플레이로 보인다. 아울러 대규모 한국산 무기 구매방침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미국, 독일이 조바심을 느끼고 폴란드에 대한 무기 공급에 나서도록 유도하고, 러시아로부터 안보위협을 느끼는 자국내 민심을 안심시키려는 다목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폴란드가 실제로 발표한 구매계획을 그대로 이행할지, 일부만 도입하고 나머진 변죽만 올리고 말지는 최종계약서에 얼마나 구체적으로 이행담보장치가 담기는지에 달려 있다고 방산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국산 경공격기 FA-50이 편대비행을 하고 있는 모습. 터키 국방부는 FA-50을 총 48대 구입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으며 현재 우리측과 구체적인 조건 등을 놓고 협상이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KAI국산 경공격기 FA-50이 편대비행을 하고 있는 모습. 터키 국방부는 FA-50을 총 48대 구입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으며 현재 우리측과 구체적인 조건 등을 놓고 협상이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KAI


◆폴란드 공개 내용 살펴보니

폴란드 국방부는 이번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K2전차 도입 주문을 2차에 걸쳐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우선 1차로 180대를 먼저 도입해 올해부터 우리나라로부터 인도 받는 것이다. 해당 1차 도입 물량은 제조사인 현대로템이 우리 육군용으로 만든 ‘K2흑표’전차를 폴란드측 수요에 맞춘 ‘K2PL’모델로 개량해 공급할 예정이다. 2차 물량은 K2PL을 폴란드 현지에서 800대 이상 생산하는 방식으로 도입하겠다는 게 폴란드 국방부의 발표 내용이다.



폴란드는 한화디펜스가 제조하는 K9자주포도 최소 2차에 걸쳐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중 1차 물량은 한국 생산 물량을 수입하고 2차 물량부터는 상당수 물량을 자국내 생산 방식으로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폴란드 국방부는 “1단계에서 48문의 곡사포(K9 자주포)를 확보할 예정"이라며 “그 중 일부는 올해 폴란드에 인도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서 “2024년부터 600문 이상의 곡사포 인도가 개시되며 2026년부터 폴란드에서 제조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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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정부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제조하는 FA-50을 신형 개량형인 ‘블록20’모델로 총 48대 구입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블록20 모델은 기존보다 레이더 성능, 비행거리 등이 향상된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블록20 모델은 아직 개발 추진 중이어서 완성품은 없는 상태다. 이에 대해 폴란드 국방부는 “(FA-50 도입 예정물량 48대중에서) 첫 12대의 항공기는 2023년 중반에 폴란드에 인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화디펜스의 'K9'자주포 첫번째 성능개량형인 'K9A1'의 모습/자료제공=한화디펜스한화디펜스의 'K9'자주포 첫번째 성능개량형인 'K9A1'의 모습/자료제공=한화디펜스


K9자주포의 첫번째 개량형 'K9A1'의 주요 특징. 향후 폴란드 수출시 현지 수요에 맞춰 추가적인 개량이 이뤄질 전망이다. /자료제공=한화디펜스)K9자주포의 첫번째 개량형 'K9A1'의 주요 특징. 향후 폴란드 수출시 현지 수요에 맞춰 추가적인 개량이 이뤄질 전망이다. /자료제공=한화디펜스)


◆막판까지 신중…'돌다리' 두드리는 尹정부

이에 대해 우리측 방위사업청은 “최종 계약이 아니다"라며 “폴란드와 FA-50, K2, K9 관련 총괄합의서를 체결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별도의 보도자료를 배포하거나 하는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폴란드 정부가 우리 정부와 사전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최종 계약인 것처럼 발표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 당국자는 “이번에 폴란드와 체결을 추진하는 총괄합의서는 일종의 양해각서(MOU)보다 조금 더 진전된 형식”이라며 “최종 계약까지는 세부적으로 더 조율할 것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중간단계 형태로 합의서를 작성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행 구속력이 있는 최종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돌다리를 두드리듯 신중을 기하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방사청이 ‘최종계약’이 아니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것은 아직 세부적인 수출 가격, 기술 이전 조건 등에 대해 최종 조율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폴란드 정부측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자국민들의 안보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우리나라, 미국, 독일 등에 전차 무기 공급을 다각적으로 재촉해왔다. 우리 정부와 방산업계는 폴란드측의 이 같은 공급요구에 적극 호응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폴란드측이 주장하는 막대한 수입 비용을 해당 국이 지불할 여력이 있는지, 또한 기술이전 등의 조건이 합당한지를 놓고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국방연구소(ADD)에서 개발되던 시절 K2 흑표 전차의 시험주행 장면. /사진제공=현대로템국방연구소(ADD)에서 개발되던 시절 K2 흑표 전차의 시험주행 장면. /사진제공=현대로템


특히 예민한 부분이 기술이전이다. 튀르키예 정부는 과거 국가명이 터키이었던 2008년 우리나라와 K2흑표 전차의 개발 기술 및 주요 부품을 구매했다. 당시 우리가 터키에 기술을 팔고 받은 금액은 3억3000만 달러에 이르는 규모였다. 2018년의 원·달러 평균 환율이 1원당 1259.5원(기획재정부 통계 기준)이었으므로 대략 4156억원 수준의 돈을 받고 원천기술을 판 것이다. 이는 1995~2008년 우리 정부의 국방과학연구소(ADD)가 K2전차 개발에 투입했던 예산 4526억원에도 못미치는 금액이었다. 당시 우리 기술을 넘겨 받은 터키는 수년후 ‘알타이’라는 이름으로 자국산 전차를 내놓았다. 이름만 다를 뿐 외형과 주요 제원은 K2를 거의 빼다박았다고 할 정도로 흡사했다. 알타이 전차는 이후 카타르 등 해외에 수출돼 우리 K2전차의 해외잠재 고객을 잠식해갔다. 이를 놓고 국내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순진하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방사청과 업계가 이번 폴란드 수출건을 놓고 세부사항까지 꼼꼼히 챙기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폴란드는 대규모 기술 이전 뿐 아니라 K2전차, K9자주포 물량의 상당부분을 자국내에서 생산하겠다고 주장하는 만큼 우리측의 사업리스크 관리가 한층 더 강조되고 있다는 게 해당 업체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폴란드가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와 접경했고, 중국 등과도 우호를 강화해온 만큼 자칫 우리의 첨단무기 및 관련 기술자료가 러시아, 중국 등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감독하는 안전장치 마련도 필요해 보인다.

다만 폴란드 정부 못지 않게 우리 정부와 방산업게도 이번 수출건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상당한 규모로 전차와 자주포, 경공격기 판매가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폴란드가 1차 도입물량이 수입을 제대로 지키는지를 보고 상호 신뢰를 쌓아가면서 상생하는 방향으로 2차 도입에 대한 구체적인 계약 추진이 이뤄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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