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깜짝 세제 혜택 카드를 꺼낸 것은 특단의 조치 없이는 국내 반도체 분야 중소기업들이 살아남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전 세계가 반도체 지원에 발 벗고 뛰어든 상황에서 한국만 지원이 부실할 경우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데 모처럼 정부와 여당이 공감대를 이룬 결과다.
국민의힘 반도체특별위원회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미국이 파격적 혜택을 제시하면서 국내외 기업들의 미국 쏠림 현상이 가속화하는 실정”이라며 “국내 투자 유인을 높여서 반도체 클러스터가 공동화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시급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미국과 유럽연합(EU)·일본 등은 자국에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보조금 전쟁’에 돌입했다”면서 “지원 규모를 보면 우리와 비교도 안 될 정도인데, 방치하다가는 초격차는커녕 국내 기업들의 이탈마저 초래해 산업 공동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미국만 봐도 투자 건당 최대 30억 달러를 지원하는 경쟁법안(USICA), 투자 금액에 대해 25%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세액공제(FABS Act) 법안을 현재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 반도체특위는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과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등도 손보기로 했다. 화학물질과 관련해 미국 등 해외보다 훨씬 엄격한 규제를 적용받는 탓에 국내 중견·중소기업들이 경쟁자들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신제품 개발을 활성화하려면 신규 물질 연구·제조·수입과 관련된 과도한 규제를 없애고 화학물질 제조 및 수입량 기준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 등의 반발이 심하다 보니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논의 자체를 금기시했다.
또 다른 반도체특위 관계자는 “화평법으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화학물질을 제조하는 중견·중소기업들이 보고 있다”면서 “화학물질 등록 시 미국보다 10배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다 보니 장비 테스트를 위해 실험 한 번 하는데 3~6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반도체특위는 화평법 10조와 16조 등을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법 개정안에는 첨단산업 종사자가 대학교수로 참여하도록 교원 자격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도 담길 예정이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는 “초빙교수 등 대학의 교원이 되기 위한 자격을 교육부에서 그동안 엄격하게 통제했는데, 이제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합리적 대우를 받고 근무할 여력이 생겼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국방부에서 검토했던 병역 특례 인원 조정은 사회적 논란을 고려해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 적용 역시 법제화까지 할 경우 현재 근로자들의 업무 부담이 과도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해 이번 법안에서는 최종 제외됐다.
반도체특위는 8월 초 법안을 발의한 후에도 역할을 이어갈 방침이다. 지자체가 반도체특화단지 공모 사업에 참여하면 특위가 직접 심사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반도체특위는 이달 내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별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충족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만큼 야당의 반발 등도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논리다.
미국 등 경쟁국 정부가 반도체 장비나 시설 투자, 규제 개혁에 총력을 다하는 상황에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중소기업에 좀 더 파격적인 혜택을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반도체는 매해 품질 개선이 필수적인데 국내 소재·부품·장비 업체 상당수는 연구개발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기 힘든 중소기업이기 때문이다. 반도체특위에 참여한 한 교수는 “세액공제 혜택이 확대되며 최소한의 여건은 만들어졌지만 실질적인 투자 요인으로 작용하려면 미국과 비슷한 수준인 30%까지는 올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 역시 “국내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기업은 네덜란드나 일본 등 해외 경쟁 기업에 비해 매출액이 절대적으로 낮아 개발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면서 “반도체 산업은 1등 제품이 아니면 사용할 수가 없다. 개발에 뒤처진 회사는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지원 확대를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