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베스트셀러보다 가치있는 책을 팝니다"

'동네 책방 주인이 된 교수님' 노명우 니은서점 대표

유명 저자·인기 도서는 거의 없어

출판사에서 돈주고 소량씩 들여와

'안 팔리면 직접 살 책'이 판매 기준

독자와 좋은 책 연결하는 매개체

외로움 해소 공간이라는 매력도

노명우 니은서점 대표노명우 니은서점 대표




어쩐지 어색하다. 분명 책방인데 그 흔한 베스트셀러 한 권 찾기 힘들다. 유명 작가의 책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주문한다고 살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다. 대신 진열대는 생소한 제목과 저자의 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서울 연신내에 자리 잡은 니은서점의 생소한 시스템은 주인인 노명우(사진) 대표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갔다. “독립 서점은 독자들에게 책이 발견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창구입니다. 잘 팔릴 것 같은 책, 충분히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책들은 여기서 판매하지 않아도 팔립니다. 굳이 여기서 취급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죠. 동네 책방은 독자의 눈에 띄지 않는 좋은 책을 발굴해 독자와 만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베스트셀러는 안 판다는 모토를 세운 이유입니다.”



노 대표의 원래 직업은 사회학과 교수다. 굳이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누리고 살 수 있는 위치다. 아이로니컬하게 독립 서점을 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방 운영을 하면서 발생하는 적자를 지금은 월급으로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대표가 월급을 축내면서까지 책방을 연 것은 학문적 위기감 탓이다. 사회학은 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인데 대학 안에 갇혀 있으면 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와 어떻게 접점을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 끝에 만든 것이 바로 동네 책방이다. 그는 “서점은 상점이기에 심리적 장벽이 없고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며 “손님들과 만나고 교류를 하면서 그 속에서 사회적 교류를 이루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노명우 니은서점 대표가 돌봄 시스템의 국가적 책임을 강조한 책 '돌봄 선언'을 소개하고 있다.노명우 니은서점 대표가 돌봄 시스템의 국가적 책임을 강조한 책 '돌봄 선언'을 소개하고 있다.



서점 주인이 된 데는 좋은 책이 독자와 만날 기회를 갈수록 잃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움도 한몫했다. 예전에는 대형 서점이 책을 발굴해 독자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책이 팔리지 않으면서 대형 서점의 행보도 바뀌었다는 게 노 대표의 분석이다. 잘 팔리는 것만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진열대에 놓고 나머지는 잘 안 보이는 서가 구석에 배치하거나 창고에 처박아 놓는다는 것이다. 책과 독자의 접점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는 “요즘 대형 서점에 가면 스테디셀러는 없고 베스트셀러만 넘치는 형국”이라며 “동네 서점은 판매 가능성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가 있는 책이 우선하는 곳이며 좋은 책들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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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대에서 ‘팬덤 정치’의 폐해를 지적한 ‘계몽주의 2.0’이라는 책이 눈에 띄기에 지갑을 꺼냈다가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진열된 책 외에 재고가 없어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위탁 판매를 할 수 없는 동네 책방의 특성에 기인한다. 출판사들은 팔릴지, 안 팔릴지도 모를 곳에 책을 대주지 않는다. 진열된 책들은 모두 출판사에서 돈을 주고 사온 것들이다. 책이 많지 않은 이유다. 책을 구입할 때 신중하고 주인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노 대표의 기준은 ‘나의 구입 의향’이다. “책을 들일 때마다 항상 묻습니다. ‘이 책이 좋은 책인가, 만약 안 팔린다면 내가 그 책을 살 것인가.’ 여기 있는 책들은 이러한 질문에 ‘네’라는 대답이 돌아온 것들입니다.”

니은서점니은서점


독립 서점은 단순히 서적을 팔고 사는 상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동네 주민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책을 매개로 활동과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파편화된 사회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해소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곳이다. 대형 서점은 하지 못하는 동네 책방만이 가지는 장점이다. 노 대표는 “동네 서점에서 책을 몇 번 사게 되면 주인과 고객이 서로 기억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취미나 관심 분야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며 “책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이를 반복하는 것은 독립 서점만이 가지는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독립 서점들은 2년을 버티는 경우가 많지 않다. 갈수록 줄어든 고객에 매달 쌓이는 적자를 감당하기 힘든 탓이다. 노 대표는 니은서점을 10년 이상 유지하려고 한다. 그는 “지금은 월급으로 적자를 메우지만 언제까지 이러한 운영 방식을 고수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퇴직 후에는 매달 책 구입비로 100만 원씩 쓰는 사람들 10명을 모아 회원제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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