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이슈 리포트]파견법만 고쳐도 수십만개 일자리 창출 가능하다

■尹 정부의 노동 개혁 과제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전 노동연구원장)

근로시간제·연공급 임금체계 개선 등

노동시장 개혁 최우선 과제로 꼽았지만

종합적 민간 인력회사 원천적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바꿔야 노융시장 발전 가능

대체근로 허용·직장 점거 파업 금지

제조업무 등 파견근로 자유화도 시급

사무직 근로자는 초과급여 제외해야





51일간 지속된 대우조선해양 협력 업체 노조원 150여 명의 불법 파업이 대우조선해양에 8000억여 원의 손해를 끼치고 종결됐다. 113개의 관련 협력 업체 근로자 1만 600여 명과 대우조선해양 종업원 8600여 명은 일감이 있어도 일을 못 해 발을 동동 구르는 처지가 됐고 파업의 여파로 7개의 협력 업체가 폐업을 했거나 할 예정이며 지역경제도 막대한 피해를 봤다. 정부는 이번 사태가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으로 노사 관계의 중요한 선례가 됐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노조원의 옥포조선소 도크 불법점거를 51일 동안 방치한 것과 노동부 장관이 현장을 찾아 점거를 풀면 정부도 돕겠다고 한 것이 법을 제대로 집행한 것인지 의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 개혁을 거론하기 전에 있는 법부터 준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조법에는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 노조는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역대 정부는 불법 파업을 자행하는 노조에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의 보고를 요구한 적이 없다. 미국은 이 보고 강제 조항을 통해 정부가 노조를 감독함으로써 불법적 관행을 차단하고 있다. 정부가 법 준수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노동 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최근 정부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발족하면서 근로시간 제도와 임금체계를 노동시장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근로시간과 임금은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근로자와 사용자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 종속변수이지 독립변수가 아니다. 일감이 넘쳐날 때는 근로시간을 늘리고 일감이 적으면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은 당연하다. 임금체계를 연공급·직무급·성과급으로 할지도 기업의 인적자원 관리 전략에 따라 달리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공정근로기준법에는 근로시간 및 임금체계와 관련된 조항이 없다. 노동시장의 상황에 따라 변하는 종속변수를 정부가 나서서 정하겠다는 발상은 노동시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시장경제에서는 모든 거래가 쌍방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자발적 계약에 의해 이뤄지지만 한국에서는 근로기준법이 자발적 계약보다 앞선다. 근로기준법은 최소한의 기준만 남기고 근로계약과 관련된 조항으로 바뀌어야 한다. 근로 제공과 사용 계약 자유의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노동 부문이 생산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미국에서 근로자와 사용자의 권리·의무를 규정하는 기본법은 관습법이다. 이에 따라 근로계약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언제라도 자유롭게 해약할 수 있다. 근로계약에 어긋나는 조항이 없는 한 근로자가 자유롭게 사직할 수 있듯이 사용자 역시 언제라도 어떠한 이유로든지 자유롭게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다. 이것을 근로자와 사용자의 임의 고용 원칙이라고 한다.

생산의 2대 요소는 자본과 노동이다. 자본을 구입하거나 이용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므로 금융시장이 발달하고 그 수요와 공급을 통해 자본이 조달된다. 금융시장은 개방경제에서 국제금융시장과 통합되지 않을 수 없고 국제 기준에 따라 비교적 효율적으로 작동하지만, 노동 부문은 세계화로부터 격리돼왔고 지대추구적 암초가 산재해 있어 불공정하고 비효율적이다. 이 상태로 노동 부문이 방치되면 경제는 성장하기는커녕 퇴보할 것이다. 금융시장에는 자본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중개하는 은행·증권회사 등 금융기관이 발달돼 있다. 그러나 노동은 자본보다 정보의 비대칭 문제가 더 심각하지만 기업과 근로자를 중개하는 노동 중개 기관이 매우 적다.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자본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총칭해 금융시장이라고 하듯이 알선·파견·용역 등 노동 중개 기관을 중심으로 노동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총칭해 노융(勞融) 시장이라고 명명한다. 미국에는 인사 업무를 대행하는 전문적 고용기관(PEO)이 700여 개나 있고 파견 회사 등이 다수 존재한다. 노융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금융기관처럼 노동의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에서 중개하는 종합적인 민간 인력 회사가 필요하지만 근로기준법이 이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 두 과제가 노동 개혁의 본질이지만 현 정권이 추진하기에는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변죽만 울리는 노동 개혁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노조 파업으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해 사용자가 해당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없고 그 중단된 업무를 도급 줄 수 없다. 파업 중 대체근로 금지 조항은 1953년 노조법이 제정될 때부터 있었는데 당시 일본의 노동법에도 없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한국이 유일하다. 노조가 억압됐던 시기에는 이 조항이 유명무실했으나 1987년 이후 노조가 활성화되면서 이 조항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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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항공관제사노조의 파업에 대체근로로 대응함으로써 노사 관계의 안정을 달성했다. 1981년 항공관제사노조의 파업으로 공항이 마비되자 그는 즉각 업무에 복귀할 것을 명령했고 48시간 내에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해고될 것임을 천명한 후 교통부 장관에게 대체근로 및 비상대책을 수립하도록 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복귀하지 않은 1만 1345명을 즉각 해고하고 그 빈 자리에 대체근로자를 투입했다. 항공관제사노조에는 벌금이 부과됐고 결국 파산해 사라졌다.

파업 중 대체근로가 가능하려면 파업 행위는 사업장 밖에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파업을 워크아웃(walkout)이라고 하는데 파업을 하면 사업장 밖으로 나가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노조가 직장점거 파업으로 업무를 방해하지만 공권력은 사용자가 요청해도 개입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용자가 취할 수 있는 대응 수단은 직장 폐쇄뿐이다. 직장 폐쇄를 해야만 파업 근로자들을 직장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직장점거 파업이 불법이므로 실질적으로 직장 폐쇄가 파업과 더불어 시작되지만 한국에서는 일정 요건을 충족해야만 사용자가 직장 폐쇄를 할 수 있고 노조가 소송을 하면 그 직장 폐쇄의 적법 여부가 판사에 의해 결정된다. 직장 폐쇄가 불법으로 판결 나면 사용자는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받는다. 사용자가 직장 폐쇄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며, 특히 공무원이나 교원으로서 기관장인 경우 직장 폐쇄를 단행하는 것은 남은 인생 전부를 던지는 큰 모험이다. 파견법은 32개 업무에 대해서만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있지만 그 업무들은 단순한 업무가 대부분이며 제조 업무는 포함되지 않는다. 제조 업체의 파견과 사내 도급은 독일·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보편적인 생산 방식이다. 독일·일본의 사례에 비춰볼 때 제조 업무를 포함한 거의 모든 업무에 파견을 허용하고 일부 업무에만 파견을 금지하는 식으로 파견법을 개정하면 한국에서도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1953년 제정될 당시부터 생산직 근로자의 경우만 다루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에 대한 초과 근로 급여로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해야 한다. 생산직은 일하는 시간에 비례해 산출물이 나오는 반면 관리·사무직은 근로 강도를 본인이 조절할 수 있고 성과에 따라 보상이 이뤄질 수 있지만 이들에게도 초과 근로시간을 계산해 50% 할증된 급여가 지급되고 있다. 미국의 근로자는 초과 근로 급여를 받을 수 없는 자와 받을 수 있는 자로 구분된다. 한국도 이렇게 근로자를 구분하면 평균 근로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 저녁이 있는 삶이 실현될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에 노동 개혁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 핵심 개혁 대상인 노조가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개혁의 주체가 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회적합의주의는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것으로 무엇이든지 결정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노사정위원회가 그 전형이다. 사회적합의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의사는 사회의 목적 또는 협동체의 결정에 의해 억압되거나 제한되므로 그 종국은 전체주의이고 하이에크가 말한 개인의 자유가 억압받는 노예의 길이다.




박기성 교수는…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국비 유학생으로 미국 시카고대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커스 및 게리 베커 교수의 지도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노동연구원 창립위원으로 참여해 노동조합 및 노동시장을 연구했고 시카고대 동아시아연구센터의 초빙연구위원으로 근무했다. 성신여대로 옮겨 노동경제 및 경제성장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한국경제학회가 수여하는 청람학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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