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캐나다선 6쪽 분량 제안서로 3~5년 펀딩…기초과학 인재 몰려"

[창간 62주년 해외 특별 인터뷰]

◆'AI 대부'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교수

목표중심형 프로젝트는 좋아보일 수 있지만 성과 못내

호기심 이끄는 연구가 중요…그것이 '커다란 발전' 핵심

딥러닝 학습 가능케한 건 빅테크…기업들 뒷받침도 필요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교수가 토론토 자택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호기심이 이끄는 연구를 하는 기초연구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토론토=정혜진 특파원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교수가 토론토 자택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호기심이 이끄는 연구를 하는 기초연구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토론토=정혜진 특파원




제프리 힌턴(74) 토론토대 명예교수는 캐나다 토론토 자택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창간 인터뷰에서 “호기심이 이끄는 연구를 하는 기초연구자들을 발굴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그것이 커다란 발전(breakthrough)을 일으킬 수 있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평소 효율적이고 절제된 화법을 구사하는 힌턴 교수는 한 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동안 유독 이 말을 다섯 차례나 강조했다.



이는 연구자로 살아온 반세기 동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1978년 그가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인공지능(AI) 분야의 박사 학위를 땄을 때만 해도 그를 주목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시 학계에는 인간이 만든 규칙을 학습시키면 이를 바탕으로 추론을 할 수 있다는 ‘기호주의 인공지능(Symbolic AI)’ 접근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그는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 심리학과 생물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그는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은 다르다고 확신했고, AI를 인간의 뇌처럼 학습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당시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심층신경망을 토대로 한 딥러닝을 연구했다. 이후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해 1987년 캐나다 토론토대에 정착한 그는 2012년 세계 최대 이미지 인식 경연 대회 ‘ILSVRC’에서 압도적인 인식 성공률 차이로 우승하기까지 35년간 변방에서 묵묵히 연구를 계속했다. 2015년 네이처지에 얀 르쾽, 조슈아 벤지오와 함께 딥러닝 논문을 발표하고 2016년 이세돌 9단과 세기의 대결을 펼친 AI 알파고(AlphaGo)가 대중에 알려지면서 오늘날 AI 열풍의 선구자로 자리잡게 됐다.

힌턴 교수는 자신을 줄곧 연구에 매달리게 한 동력은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의 깨달음이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일곱 살 때 처음 간 학교가 종교적인 색채를 띠었는데 학교에서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친구들과 달리 나는 그렇지 않았다”며 “처음으로 사람들은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그때의 경험이 ‘다른 연구자들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연구를 지속하게 된 바탕이 됐다”고 술회했다.



그가 미국을 떠나 캐나다에 정착한 것은 기초과학 분야에 안정적으로 펀딩이 이뤄지는 환경 때문이다. 힌턴 교수는 “미국만큼 펀딩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캐나다는 기초연구에 상당 부분의 투자를 집행한다”며 “미국의 교수들이 연구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한 제안서를 쓰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써야 할 정도인 반면 캐나다에서는 6쪽 정도의 제안서만 내도 3~5년 펀딩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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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 교수가 캐나다 토론토 자택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은 위대하다(AI is wonderful)”는 말을 연발하고 있다./토론토=정혜진 특파원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 교수가 캐나다 토론토 자택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은 위대하다(AI is wonderful)”는 말을 연발하고 있다./토론토=정혜진 특파원


AI 인재 육성과 훌륭한 인재 유치를 내세우는 한국 정부를 향해서도 기초연구 투자를 우선순위에 두라는 조언을 했다. 힌턴 교수는 “정치권이나 정책 담당자 입장에서는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훨씬 쉽다”면서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유혹에 빠지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는 특히 1982년 일본 정부가 1000억 엔(약 9700억 원) 규모로 추진한 제5세대 컴퓨터 프로젝트를 예로 들며 “목표 중심형 프로젝트는 언뜻 좋아보일 수 있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다. 이런 식의 투자는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힌턴 교수는 성과나 목표 지향적 태도를 경계한 캐나다 정부의 기초연구 투자가 오늘날 캐나다를 AI 분야의 리더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캐나다는 2017년 세계 최초로 범국가 AI 전략을 수립하고 첫해에 1억 2500만 캐나다 달러(약 1275억 원)를 힌턴 교수가 이끄는 벡터연구소를 비롯해 몬트리올 소재 밀라연구소, 에드먼튼앨버타연구소(AMii) 등에 집중 투자했다. 캐나다 정부는 올해 투자 규모를 4억 4300만 캐나다 달러로 늘렸다.

힌턴 교수는 호기심 있는 연구자들의 지속적인 연구를 위해 정부 이상으로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딥러닝의 효과적 학습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를 구동할 수 있는 컴퓨터 성능이 뒷받침된 게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조 단위의 데이터를 학습시키기 위한 엄청난 양의 컴퓨팅 파워는 구글 같은 빅테크들이 할 수 있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힌튼 교수는 자신이 세운 DNN리서치가 구글에 인수되면서 구글 석학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지난 10년간 구글 캐나다 법인은 연구 기금에 1800만 캐나다 달러를 투입했다.

이는 기업 경쟁력에도 큰 보탬이 된다. 그는 “구글이 기초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는 만큼 상용화에도 큰 강점이 있다”면서 “학계와 기업 사이의 이동이 자유롭다는 점도 (상용화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토론토=정혜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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