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여간 ‘맛터사이클 다이어리’ 시즌 3를 찍고 본업으로 돌아온 신계숙 배화여자대학교 전통조리과 교수를 만났다. 58세 중년의 여성이 할리데이비슨 포티에잇을 타고 미식 기행을 다니는 ‘맛터사이클 다이어리’는 또래 중년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 2020년 시즌1을 찍은 뒤 2021년 시즌2, 올해 시즌3를 마무리 지었다.
신 교수가 맛집 기행 프로그램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9년 ‘세계테마여행’이라는 TV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다. 시청률이 높아 차기작을 준비하던 중 코로나19가 발생해 시선을 국내로 돌리게 된 것. 그는 “당시 유명인을 내세운 많은 미식 기행 프로그램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고민하던 중 자신이 빠져있는 할리데이비슨 포티에잇을 타고 전국을 다니는 미식 기행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50세가 넘은 중년여성이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미식기행을 다니는 기획이 만들어졌다.
신 교수가 중년의 나이에 오토바이를 타게 된 것은 중년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갱년기’ 때문이었다. “갱년기를 겪으면서 상열감으로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워져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다”는 신 교수의 첫 번째 오토바이는 스쿠터였다. 이후 할리데이비슨의 매력에 빠져 할리데이비슨을 구매해 지금에 이르게 됐다.
가죽자켓을 걸치고 빨간 목도리를 두른 후 할리데이비슨 포티에잇을 타고 달리는 신계숙 교수의 모습은 어느덧 신중년의 상징이 됐다. 이제 그의 꿈은 90세까지 할리데이비슨 포티에잇을 타고 전국을 달리는 것이다.
- 촬영이 끝나서 조금 여유로워졌나.
“마침 학교가 방학을 하긴 했으나 여유롭지는 않다. 지난해 말에 문을 연 식당에 집중하고 있다.”
- 지난 4월 즈음 촬영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얼마나 찍은 건가.
“4개월 정도 촬영했다. 촬영하면서 학교 수업도 하고, 식당도 운영해 매우 바쁘게 지냈다. 수요일 새벽 5시에 촬영장소로 이동해 금요일에 서울로 올라오는 코스였다.”
- 촬영하면서 세 가지 일을 다 하다니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땠나.
“정말 몸이 세 개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그래도 요일마다 하는 일이 달라 힐링이 됐다. 월, 화요일에 학교에서 수업하다 스트레스받으면, 수요일에 여행 가듯 촬영지로 떠나 힐링하고, 촬영 때 힘들었던 것은 돌아와서 식당에서 일하며 힐링 받았다.”
- 지금이 딱 휴가철이다. 이번에 다녀온 곳 중 추천해주고 싶은 여행지가 있나.
“장소와 음식으로 나눠서 말해야 할 듯하다. 장소로는 충남 태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 가경주마을이라고 있는데, 해양수산부의 지원을 받아 마을을 깔끔하고 예쁘게 잘 꾸며놨더라. 음식은 전남 목포가 가장 인상 깊다. 그곳에서 먹은 민어회를 잊을 수가 없다.”
- 노량진의 민어회와 목포의 민어회 중 어디가 더 맛있나.
“민어라는 생선은 우리가 늘 먹는게 아니어서 맛을 비교하긴 어려울 것 같다. 목표에서는 민어회만 먹은 게 아니라 탕, 회, 전, 무침 등 민어로 만든 다양한 음식이 나와서 한 상 가득 차려져 나와 색다른 느낌으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 ‘맛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시작한 지 벌써 3년차더라.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게 됐나.
“2009년에 세계테마기행을 다녀왔다. 내가 출연한 방송이 다행히 최고 시청률이 나와 차기작 제안을 받고 중국 미식 기행을 기획하던 중 코로나19가 터졌다. 대신 국내 여행을 기획하게 됐는데, 이미 다양한 미식 기행 프로그램이 있어 고민하다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가는 미식 기행을 직접 기획해 제작사에 제안했다.”
- 할리데이비슨은 언제부터 타기 시작한 건가.
“당시 할리데이비슨을 타기 시작해 연수를 받고 있었다. 오토바이는 58세에 타기 시작했다. 당시 갱년기 상열감으로 버스를 타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스쿠터를 1년 반 정도 타다 할리데이비슨을 알게 돼 직접 2,200만원을 주고 샀다.”
- 중년에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는데, 오토바이의 매력이 궁금하다.
“몰두다. 오토바이는 집중하지 않으면 자칫 내가 죽을 수도 있다. 전방, 후방, 사방을 주시하며 목적지만 생각하고 안전하게 가게 된다. 그 순간에는 잡념이 사라진다. 특히 할리데이비슨은 엔진이 돌아가면서 그 에너지가 몸으로 전해지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내 눈앞의 사물들이 같이 움직인다. 그런 느낌 하나하나가 좋아서 오토바이를 계속 타게 된다. 지금 바람은 90살까지 타는 것이다.”
- 성격이 너무 시원시원해서 MBTI가 궁금하다. 해봤나.
“MBTI는 한 번도 안해봤다(웃음).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보면 힘이 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 유튜브와 방송 활동을 통해 자연스레 신중년들의 상징이 됐다. 어떤가.
“너무 기분 좋다. 미식 기행을 떠나면 구경 오신 분들이 나를 “계숙씨~”하고 부른다. 그럼 내가 누가 아가씨 이름을 함부로 부르냐고 응답하면 촬영장이 웃음바다가 된다(웃음).”
- 현재 배화여자대학교 전통조리과 교수로 재직 중인데, 요리를 전공했나.
“아니다. 중국어를 전공했다. 사실 젊었을 땐 ‘뭐가 돼야지’라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요리를 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요리를 참 잘했다. 두부 하나까지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었다. 그 덕분에 내가 이쪽 길에 들어선 듯하다. 35년 이상 요리를 하고 있는데, 요리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즐겁다.”
- 그럼 엄마 곁에서 요리를 보고 배운 건가.
“그렇진 않다. 교수님이 중국요릿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라고 권하더라. 그렇게 시작한 아르바이트 경험이 지금에 이르렀다.”
- 요리를 배운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반대가 심했다. 대학까지 나왔는데 왜 중국집 주방에서 일하느냐고 모두 말렸다. 계속 일하려고 가출까지 했었다. 나는 시작할 때 신중하고, 시작하고 나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다.”
- 지난해 하반기 이름을 내건 식당을 열었다. 원래 계획이 있었나.
“인생 계획이었다. 식당을 하기 위해 35년을 기다려왔다.”
- 당시 코로나19가 심했던터라 식당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가.
“인생 계획에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주변에서 “너는 왜 남들이 다 그만둘 때 시작하느냐”고 묻더라(웃음). 오토바이도 남들이 그만 탈 때 시작했고, 식당도 남들이 문을 닫을 때 열어서 그런듯하다.”
- 식당이 짧은 기간에 자리를 잘 잡은 듯한데, 비결이 있다면.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나의 노력에 대한 것은 배신이 없다는 성어가 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저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요리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필요하면 새벽 3~4시에도 나와서 만든다. 내가 정성을 요리에 담으려고 노력한 것을 손님들이 알아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 올해 목표는.
“당분간은 식당 운영에 집중할 생각이다. 지금 식당 메뉴 자체가 예약해야 먹을 수 있는 게 대부분이어서 메뉴를 보강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