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반 3㎚(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 공정 양산품 출하식이 열린 지난달 25일 삼성전자(005930) 화성 공장. 반바지, 라운드 티셔츠 등 자율 복장 차림을 한 수많은 직원들의 모습이 전통적인 생산 시설보다는 대학 캠퍼스와 더 비슷한 인상을 줬다. 차세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산업에서 대만 TSMC를 따라잡고 1위로 올라설 기술 혁신의 힘이 자유분방함에서 나오는 듯한 분위기였다.
점심시간임에도 12라인 낸드플래시 생산 시설에서는 지능형 이송시스템(OHT)이 웨이퍼를 쉬지 않고 나르고 있었다. 각종 장비 유지·보수를 맡은 직원들은 공장 안에서 방진복을 입은 채 열심히 시설을 뜯어보고 있었다. 3나노 양산을 맡은 S3 라인은 축구장 100배 크기의 거대한 몸집 속에서 최첨단 기술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이날 출하식 현장에서 서울경제 취재진과 만난 삼성전자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경쟁사들이 올 하반기와 내년 3나노 반도체 기술을 선보이겠다고 했지만 모두 기존 핀펫(FinFET) 기반”이라며 “현실적으로 두 회사가 GAA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시기는 2025년으로 본다. 기술적으로 삼성전자가 3년을 더 앞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화성 공장은 삼성전자가 지난달 30일 양산을 시작한 GAA 기반 3나노 반도체를 현재 유일하게 생산하는 장소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 사장,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화성 공장으로 총출동해 출하식을 연 이유도 이곳에 대한민국 시스템반도체의 미래가 달렸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3나노 반도체 공정은 기존 5나노·4나노보다 미세하고 정확하게 회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이다. 특히 트랜지스터의 모든 면에서 전류가 흐르는 GAA 제조 기술은 3개 면에서 전류가 흐르는 기존 핀펫 기술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게 특징이다. 3나노 GAA 1세대 공정은 기존 5나노 핀펫 공정보다 전력은 45% 절감하고 성능은 23% 향상시킨다. 면적도 16%나 더 작다. 삼성전자는 GAA 트랜지스터 구조를 2000년대 초반부터 연구하기 시작해 결국 20여 년 만인 올해 그 결실을 봤다.
당초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공언한 올 상반기 3나노 반도체 양산 계획에 의문을 표했다. 특히 고객사들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경쟁사들의 견제가 극심했다. 이는 각각 올 하반기, 내년 하반기를 양산 목표 시점으로 내세운 TSMC·인텔보다 한참 빠른 일정이었다. 올 초에는 초미세 공정 파운드리 수율 문제로 주요 고객사가 이탈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일각에서는 3나노 반도체는 현존 기술의 한계라는 지적도 나왔다. 더욱이 GAA 기반 최첨단 반도체는 TSMC·인텔이 아직 구체적인 생산 계획도 수립하지 못한 제품이다.
삼성전자의 기술 속도전은 5월 20일 평택 공장을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나노 반도체 시제품에 서명하면서 비로소 베일을 벗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당시 이 제품을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에게 직접 소개하며 전 세계에 자신감을 과시했다. 스스로 내건 약속을 결국 여봐란듯이 지킨 삼성전자의 양산 소식에 경쟁사들은 적잖게 당황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GAA 기술을 가장 먼저 연구한 회사도 삼성전자이고 실험실 밖에서 제품화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기업도 삼성전자”라며 “처음에는 업계에서 GAA 기술을 회의적으로 봤지만 이제는 다른 회사 사업 로드맵에 전부 다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GAA 기반 3나노 반도체 공정을 고성능컴퓨팅(HPC)에 우선 적용하고 이후 모바일 시스템온칩(SoC)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 화성 공장뿐 아니라 평택 공장에도 GAA 기반 3나노 파운드리 공정 제품의 양산 체계를 도입하기로 했다. 파운드리 고객사도 지난해 100개 남짓에서 2026년 300개 이상으로 늘린다. 2003년 화성 공장에서 세계 최초로 1Gb(기가비트) DDR(더블데이터레이트) D램을 양산하며 메모리반도체의 기가 시대를 열어젖힌 것처럼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혁명을 주도하겠다는 복안이다. 화성 공장은 파운드리뿐 아니라 D램, 낸드플래시, 이미지 센서 등 반도체 관련 분야의 대부분을 다루고 있다.
업계에서도 GAA 기반 3나노 반도체 양산이 삼성전자가 TSMC를 단번에 따라잡을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이 제시한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는 분석이다. 첨단 기술에서 앞설수록 미국·유럽의 대형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대만 시장 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전 분기 52.1%에서 53.6%로 증가한 반면 삼성전자는 18.3%에서 16.3%로 떨어졌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한계를 극복해 온 것이 반도체의 역사”라며 “새로운 공정이 나오면 초기에는 당연히 수율이 낮다. 다만 삼성은 양산할 수 있을 정도로 수율을 확보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생산을 거듭할수록 수율은 더 빠르게 올라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어 “파운드리 판도를 바꾸는 데 3나노는 하나의 무기”라며 “기술 혁신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