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238단 제품 공개로 글로벌 낸드플래시 업계에서 ‘200층 이상’ 적층 경쟁이 불붙었다. SK하이닉스의 238단 낸드 발표 외에도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도 200단 이상 첨단 낸드플래시 칩 양산을 발표했다. 특히 그간 세계 낸드 시장에서 중하위권에 속했던 회사들이 기술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그간 독보적 1위를 유지했던 삼성전자와의 기술 격차가 급격히 좁혀지면서 치열한 기술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가 ‘플래시 메모리 서밋 2022’ 행사에서 공개한 현존 최고층 238단 낸드플래시는 512기가비트(Gb) 트리플레벨셀(TLC) 제품이다. SK하이닉스가 업그레이드한 것은 비단 저장 공간 수뿐만이 아니다. 이번 제품에는 2018년부터 적용했던 차지트랩플래시(CTF), 페리언더셀(PUC) 등 4D 낸드 기술을 업그레이드해 적용했다. 이전 세대인 176단 제품보다 생산성이 34% 향상했다.
데이터 전송 속도는 초당 2.4Gb로 기존 대비 50%나 빨라졌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칩이 데이터를 읽을 때 쓰는 에너지 사용량이 21% 줄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낸드 5위 업체 마이크론도 SK하이닉스의 발표 불과 일주일 전 232단 낸드 양산을 발표했다. 기존 대비 저장 공간을 56층 더 확보하면서도 패키징 면적은 28% 줄인 것이 특징이다. 스콧 드보어 마이크론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우리의 혁신적인 기술은 176단 낸드 양산에서 얻은 우수한 칩 구조와 소재를 토대로 만들었다”며 “이번 신제품은 업계의 200단 이상 낸드 개발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후발 주자인 중국 YMTC의 약진도 지켜볼 만하다. 업계에 따르면 YMTC는 192단 낸드 플래시 연내 양산할 방침이다. YMTC는 지난 상반기 중국 우한에 두 번째 공장 외관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회사 출신 엔지니어들도 포진해 있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YMTC의 공통점은 세계 낸드 업계에서 매출 기준 3~6위권 회사라는 점이다. 이들이 앞다퉈 첨단 낸드 칩 양산을 발표하는 것은 이 업계가 ‘영원한 선두’가 없는 치열한 전장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
낸드플래시는 전자 기기 내에서 각종 데이터를 장치가 꺼진 상태에서도 저장할 수 있는 칩이다. 저장 공간을 마치 아파트처럼 수직으로 쌓아올리는 3D 낸드플래시 특성상 단수가 높을수록 더 많은 정보를 기록할 수 있다.
이 분야에서 35.5% 점유율로 독보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는 회사는 삼성전자다. 2013년 저장 공간을 수직으로 쌓아올린 V낸드를 처음으로 양산한 뒤 기술·생산능력 면에서 ‘초격차’를 구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28단 저장 공간에 전기 연결을 위한 구멍인 ‘채널 홀’을 한번에 뚫는 독보적인 ‘싱글스택’ 기술로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다만 아직 삼성전자는 200단 이상 낸드 제품 양산 소식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인 송재혁 부사장은 지난해 6월 “200단 이상 8세대 V낸드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며 “V낸드의 미래는 1000단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고만 밝힌 바 있다. 후발 경쟁 업체들의 선단 기술 확보가 빨라질수록 삼성전자는 적지 않은 위협을 느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한 SK하이닉스가 기술 경쟁력 확보 외에 점유율 확장까지 나서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2월 인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업과 중국 다롄 공장 등을 인수해 ‘솔리다임’이라는 자회사를 만들었다. 중국 다롄 공장은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10만 장 규모다. 이밖에 각종 유무형 자산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우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차지하고 있던 독보적 낸드플래시 경쟁력을 후발 주자들이 빠르게 쫓아오고 있다”며 “매출과 생산능력 외에도 기술 우위 선점 경쟁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