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대학·지역별 나눠주기 그만…'첨단 인력 대계' 선택·집중 필요"

[창간기획-팍스테크니카, 인재에 달렸다]

< 4·끝 > 인재 양성 어떻게-전문가 진단

대학원 '인재 양성소'로 강화…연구 중심 대학엔 지원 집중

산학협력모델 최우선 가치는 수익사업 넘어 인력 육성에

英 다이슨같이 기업이 커리큘럼 만들어 현장 역량 키워야





국내 교육·과학·통상·행정 분야 최고 전문가들은 반도체와 같은 미래 산업을 이끌 인재 육성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교육정책 수립 시 지방 균형 발전, 공교육 강화 등 이념적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는 이슈들을 지나치게 의식할 경우 팍스테크니카(Pax Technica·기술 패권)에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인재 확보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또 미래 핵심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에 보다 많은 자율 권한을 제공하고 추가적인 재원을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7일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초격차 유지를 위해서는 핵심 인재 육성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필요하다”며 “인재 양성소로서 대학원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첨단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연구 역량 제고에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특히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자연과학에서부터 소프트웨어·기계공학·재료공학 등 공학 분야와의 협업도 중요하다”며 “이런 특성을 고려해 대학 내 협업 연구를 강화하는 한편 대학별 나눠주기식이 아닌 연구 중심 대학에 지원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인력 양성 정책이 진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내 산학 협력의 내실화에 보다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현재 산학 협력 모델은 대학의 수익 사업 정도의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지금 시스템에서는 ‘산학 협력 프로젝트를 얼마나 유치했느냐’가 평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인재 육성을 최우선 가치로 둔 산학 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서로가 ‘윈윈’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급변하는 기술에 발맞춰 교육 커리큘럼이 달라져야 한다는 고언도 나왔다.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초중등 교과과정에서는 학생들이 미래 산업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창의성과 디지털 문해 능력(디지털 리터러시)을 향상시키는 데 교육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갈수록 기계가 인간이 하는 많은 업무를 대체할 수밖에 없는데, 이럴 때일수록 협력이나 배려와 같은 인간적 역량을 더욱 제고시킬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 이사장은 ‘공교육 만능주의’를 벗어나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인공지능(AI)·메타버스 등과 같은 신기술 습득은 공교육보다 사교육의 효과가 훨씬 클 수 있다”며 “교육은 국가와 교육자가 해야 한다는 관념이 바뀌어야 하며, 이 같은 교육에 대한 이데올로기 변화가 실제 정책으로 구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문제 차이로 대학의 당락이 좌우되는 ‘줄서기식’ 입시 개편을 주문하는 목소리 역시 높았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서울대 기계공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에 느낀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입시 위주의 교육”이라며 “고등학교 3학년 내내 결국 문제풀이식 ‘실수 줄이기’ 경쟁을 하고 있는데, 이런 식의 인재 에너지를 낭비하는 관행이 계속될 경우 어떠한 인재 양성 대책을 내놓더라도 백약이 무효”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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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다이슨대학교’ 설립 사례와 같이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직접 양성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 또한 나왔다. 다이슨대학교는 ‘날개 없는 선풍기’ 등 각종 혁신으로 글로벌 전자 제품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 다이슨이 2017년 영국 왕실의 승인을 받아 만든 대학이다. 학생들은 4년여 동안 다이슨 소속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에게 실무 경험을 전수받으며 공동 연구도 수행한다. 안 교수는 “다이슨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은 대학을 만들어 자신들이 필요한 커리큘럼 통해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며 “이에 비해 국내 기업들은 코로나19로 불황이 예상되자 가장 먼저 줄인 예산이 인재 양성 분야였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학이 특정 기업만 바라보고 그에 맞는 커리큘럼을 만들기 힘들다는 점에서 다이슨대학교와 같은 사례가 아니더라도 기업이 대학생 현장 훈련(OJT) 등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인재 양성에 투자할 재원 확보를 위해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제기됐다. 정 교수는 “지난 14년간 대학 등록금 동결로 사립대학 재정이 악화돼 투자 여력이 많이 떨어졌다”며 “대학 재정 악화로 우수 인재를 육성하지 못할 경우 산업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며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안 교수 역시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초중등 관련 교육예산은 상위 5~6위권 수준이지만 대학 관련 예산은 하위 5~6위권이며 한국보다 대학 관련 예산이 적은 곳은 그리스·튀르키예(터키) 정도밖에 없다”며 “특별교부금을 대학 재원으로 전용하는 방식 등으로 대학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인재 양성에 대한 투자도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해외 인재를 국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과감한 규제 해소를 단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 교수는 “집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거대 디지털 클러스터’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 등 주요 산업단지와 비교할 경우 한국은 연봉, 연구 분위기, 정주 여건 등 모든 것이 뒤처져 있다”며 “그나마 국내에서 성공한 사례가 판교 테크노밸리인데 정부는 디지털 혁신 거점을 여러 지역에 분산 조성한다면서 거대 클러스터 조성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런 방식으로는 디지털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네트워크 효과 및 규모의 경제를 기대하기 힘들다”며 “판교나 인천 송도 등 수도권 지역에 글로벌 디지털 기업이 입주하도록 인센티브를 과감하게 제공하고 이들 기업이 국내 및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해외 인력 유치 문제를 외국인 노동자 확보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곤란하다”며 “전문인력을 잡기 위한 고민을 더 해야 하는데 ‘특별 비자’를 도입하는 등 이들이 한국에 잘 정착할 수 있는 이른바 ‘브레인 게이닝’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 단기 취업을 원했던 한 외국인 학생이 비자 문제 때문에 취업에 실패한 사례를 언급하며 “해외 사례를 보면 인공지능 등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한 분야는 바로 영주권이 제공된다”며 “미국도 전문인력에게 ‘그린카드(영주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인재를 늘리고 있다”고 했다.

대학 교과과정에 영어 수업을 늘려 외국 인재들이 느끼는 ‘언어 장벽’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회장은 “영미권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영어 강의를 늘려야 하지만 이공계 학부에서는 영어 강의가 많지 않다”며 “영어 토론을 활발히 해 국내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제고하는 한편 언어 문제로 한국 유학을 꺼리는 외국 인재를 끌어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가 관련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미국의 경우 최근 ‘무한프런티어법(Endless Frontier Act)’을 통해 인재 확보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해당 법안은 향후 5년간 연구개발(R&D) 자금 1200억 달러를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상무부·에너지부·항공우주국(NASA·나사)에 배정해 미국의 과학 및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특히 해당 법안의 주요 내용에는 NSF 내 기술국 신설뿐 아니라 미국 내 이공계 인력 양성이 포함돼 있다. 이 회장은 “미국은 인재 없이는 R&D도 없다는 것을 알고 R&D 지원 법안에도 교육 혁신에 대한 예산 투입을 명시했다”며 “반면 우리는 평소에는 교육을 등한시하다 반도체 업계처럼 인력난이 생겨야 움직이기 시작하니 인재 양성이 제대로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세종=양철민 기자·세종=권혁준 기자·세종=우영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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