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긴축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높은 인플레이션 등으로 전 세계적인 금융·외환시장 불안에 팽팽한 긴장감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미 연준이 연속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서 한미 금리가 2년 5개월 만에 역전된 상태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최근 나타나는 원·달러 환율 상승과 외환보유액 감소, 무역수지 적자 등 각종 악재가 위기로 이어지지 않을지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가 반복될지를 두고 논쟁도 격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경제 관료 중 한 명인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이번 위기를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997년 외환위기 같은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 평가했다. 신 전 위원장은 지난 3일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실에서 공동주최한 ‘급등하는 미국금리와 점증하는 외환위기 대응방안’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다만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특성상 자칫 잘못 대응하면 그에 버금하는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내놓았다. 신 전 위원장은 “금융시장은 충격에 약한 유리그릇과 같이 예민해서 거칠게 다루면 자칫 깨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신 전 위원장은 현 상황이 외부 요인 영향이 컸던 2008년 금융위기와 유사하다며 당시와 비교해 유리한 면과 불리한 면을 각각 분석했다. 먼저 유리한 면에서는 현재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를 훨씬 넘었고 금융기관의 외화 건전성이 양호하다는 점을 들었다. 두 번의 대형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노하우도 쌓였고 현재 핵심 정책당국자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최상목 경제수석 등 모두 2008년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실전에 투입됐던 유경험자라는 점도 있다.
반대로 재정 여력 부족은 불안 요소로 꼽았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위기 극복 과정에서 재정이 큰 역할을 했는데 최근엔 코로나19 확산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건전성이 크게 악화됐다는 것이다. 국제협력이 쉽지 않다는 문제도 지목했다. 신 전 위원장은 “2008년 당시에는 주요 20개국이 모여 금융위기 타개책을 모색하면서 글로벌 유동성 공급에 합의했다”라며 “지금은 그때와 달리 미·중, 미·러 갈등 등으로 전 세계적인 국제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워 금융위기에 대한 공동대응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 전 위원장은 당분간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외부 충격을 잘 흡수할 수 있는 실용적인 제언을 몇 가지 내놓았다. 먼저 정부와 한은이 한 팀을 이뤄 정보를 완전 공유하고 독자 행동을 피하면서 중요한 발표는 공동으로 하라고 했다. 주요 수출입 기업과의 소통 채널도 강조했다. 기업 상황을 알아야 시장 대응이 수월하고 불안 심리도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인위적인 환율방어선을 정하고 외환보유액을 의미 없이 소진하는 것도 피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무지가 심각해 무디스나 S&P 등 신용평가기관과 소통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홍콩 등 역외시장에서 원·달러 선물환 환율이 치솟는 데도 환율 안정시키겠다며 국내 현물환시장에서 귀중한 외환보유액을 소진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미국 재무부, 중앙은행, 의회 인사와의 네트워크를 강조했다. 경제가 불안하면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가 더욱 강해지는 만큼 많은 국가가 달러 부족에 허덕이게 되고 달러를 공급받을 채널이 필요해진다는 것이다. 신 전 위원장은 “미국은 사실상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등 모든 국제금융기구를 움직이고 있으며 강력한 금융제재까지 할 수 있다”며 “준기축통화를 발행하는 유럽연합(EU)이나 일본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일수록 미국의 힘이 강해지는 만큼 그들을 이용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루빈, 폴슨, 가이스너, 그린스펀, 버냉키 등 역대 미 재무장관이나 연준 의장들의 자서전을 보면 소위 그들만의 핵심 인맥이 있다”며 “이러한 이너서클(inner circle)‘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해 놓으면 급할 때 아주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라고 제언했다. 뉴욕 월스트리트에 대한 인적 네트워크 강화나 외신, 글로벌 신용평가사와의 소통도 강조했다.
신 전 위원장이 미국과의 인맥을 강조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미흡했던 정부의 경제 외교와도 무관치 않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 세계 통화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미국과의 교섭은 멀리한 채 일본에 외환공급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라며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미국과 일본은 이미 한국의 외환 부족 사태를 IMF 구제금융으로 처리하기로 협의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