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덮친 집중 폭우로 상처가 큰 가운데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국민들이 미리 숙지할 수 있도록 고지하는 시스템을 고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2016년부터 ‘생활안전지도’ 등 재해 위험을 예보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인지도가 떨어지고 실제 상황에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2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생활안전지도는 국민 안전을 위해 국가가 보유한 정보를 한데 모아 지도 형식으로 만들어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다. 재난부터 교통·치안·보건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이 목표지만 중부지방 집중호우 때 생활안전지도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방대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가공하는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실제로 생활안전지도에서 침수흔적도와 홍수범람위험도를 검색하면 일부 부족한 콘텐츠 문제가 확인된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으로 지역을 설정하면 0.5m 미만의 1등급 상황에서도 홍수 범람 위험이 표기되지 않는다. ‘하천’에 의한 범람이 발생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내려 침수된 경우에는 ‘내수침수’에 해당하며 이 데이터는 생활안전지도에 적혀 있지 않다.
생활안전지도에서 과거 침수 내역을 종합적으로 보는 것도 쉽지 않다. 이번 호우에 피해를 본 서초구 반포동 강남고속터미널 일대와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일대는 각각 한강과 양재천 등 하천이 가까워 홍수범람위험도에서는 1~4등급의 위험 지역으로 표기돼 있지만 침수흔적도에서는 빠져 있다. 그러나 이들 지역은 모두 2011년 7월 말에 발생한 집중호우 때도 심각한 침수 피해를 당해 생활안전지도에서 놓치면 안 될 곳으로 꼽힌다.
홍수범람위험도 데이터를 관리하는 환경부는 “서초동은 하천 인근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홍수범람위험도 대신 내수침수위험도에서 위험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면서도 “현재 생활안전지도에서는 내수침수위험도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홍수 예방부터 위험관리(환경부·국토교통부), 대국민 정보 전달(행안부) 등 연계된 부처가 여럿이라는 점도 긴밀한 대응이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10일 국내 주요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난 자리에서 “원래 토목적 측면에서 국토지방관리청이 주체가 돼 (하천을) 관리해왔는데 유역환경청으로 넘어간 상태”라며 “앞으로 집중호우 등 국민 피해가 예상되는 부분에 있어 면밀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의 생활안전지도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일본의 재해예측도, 이른바 해저드맵처럼 주민에게 직접 자료를 배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진이 잦은 일본은 지반과 표고를 토대로 만든 해저드맵을 지방자치단체마다 팸플릿 형태로 만들어 주기적으로 배포하고 있다. 해저드맵은 언제 어디서 홍수나 지진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주요 국가의 언어로 번역돼 있다. 지진해일과 토사 재해(산사태) 등 재해의 유형에 맞춰 자료가 만들어져 있어 상황별 대응을 유도한 것이 특징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폭우가 내릴 때 침수 피해뿐 아니라 공사 중인 지역을 실시간으로 안내해주면 시민들이 보다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자체나 소방·경찰 등의 기관 종합상황실에서 접하는 정보를 시민들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버스정류장 안내판 등에 띄워 안전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