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아무리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라도, 힘없는 노인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흔하게 하는 일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소중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봉사 단체 타임뱅크코리아의 손서락(56·사진) 대표는 12일 서울 홍은동 타임뱅크하우스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봉사란 단순히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정이나 이웃을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타임뱅크란 1980년대 말 미국에서 시작된 사회운동으로 사회적 봉사 활동을 시간적 가치로 환산해 저장하고 이를 서로 교환함으로써 상호 호혜를 확산하는 봉사 활동이다. 쉽게 얘기해 남을 위해 1시간을 쓰면 봉사를 베푼 사람이 자신이 원할 때 해당 시간만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초반 김요나단 대한성공회 신부가 ‘사랑의 고리’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했고 2017년에는 사단법인 타임뱅크코리아가 설립됐다. 한 달 전에는 지역 단위의 타임뱅크 운동을 실천하기 위한 운영 조직인 타임뱅크하우스도 등장했다.
손 대표의 전공은 원래 복지와는 아무 상관없는 경영학이었다. 직업도 기업과 자산가를 대상으로 경영 및 자산 운용을 조언해주는 컨설턴트였다. 인생 경로가 바뀐 것은 한 요양병원을 컨설팅하면서 알게 된 충격적인 경험 탓이었다. 그는 “노인을 병원에 가두고, 환자를 사고파는 현장을 보면서 너무 충격을 받았다”며 “이런 돌봄이면 우리 미래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해 대안을 찾기 시작했고 타임뱅크가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돌봄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동참 이유를 밝혔다.
손 대표는 타임뱅크 활동의 목적이 ‘봉사’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혼자 사는 노인이나 장애인·환자들은 육체적·정신적 한계 탓에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다. 이들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무력감에 빠지며 자존감을 상실해가는 이유다. 타임뱅크는 재능이나 도움을 주고받으면 이렇게 소외된 사람들을 사회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네 이웃들과 어울림으로써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며 “남에게 주는 것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도움을 주는 일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누워 있는 어르신들의 손발톱 깎기, 아이들 학교 데려다 주기, 외로운 사람들과 대화하기 등 남이 보기에 사소하다고 여기는 일도 여기서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활동이 된다. 손 대표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한 발달장애인에게 뇌전증으로 학교를 그만둔 10대 청소년을 소개해줬더니 인형놀이·종이접기 등을 하며 같이 놀아주더라”며 “이러한 활동을 통해 ‘나도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쓸모 있는 존재구나’ 하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도움을 주고받으려면 누가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조사하고 목록화하는 것을 손 대표가 가장 신경 쓰는 이유다. 도움을 받을 사람과 주는 사람을 연결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타임뱅크 온라인 플랫폼 ‘시간의꽃밭’을 준비하는 것도, 서울시가 최근 도입한 ‘서울시간은행’에 참여한 것도 이러한 필요성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소규모로는 가능하지만 규모가 커지면 혼자 힘으로 하기 힘들다. 손 대표가 정부나 다른 조직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이유다.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힘을 합치지 않는다면 노인 문제도, 사회 안전망 구축도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예산을 쏟아붓는다고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이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사회적기업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머리를 맞대고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