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국내 코스피 상장사들이 역대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겉으로 보면 ‘실적 잔치’를 벌였지만 추이를 보면 경기 둔화 시그널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삼성전자를 걷어낸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8%나 감소했으며 대표적 수익 지표인 영업이익률도 낮아지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하반기 경기 둔화가 본격화하며 기업 이익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본다.
18일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상반기 코스피 기업들의 매출액(연결 기준)이 전년 동기 대비 25.09% 증가한 1361조 8708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영업이익은 16.68% 늘어난 107조 3084억 원이었다. 모두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순이익은 전년과 비슷한 85조 8070억 원이었다.
덩치는 더 커졌지만 내실은 나빠졌다.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상반기 8.45%에서 소폭 내린 7.88%였고 순이익률도 7.83%에서 6.30%로 1.53%포인트 하락했다. 금리와 환율 상승 등에 따른 환차손, 금융자산 가치 평가손실이 늘어난 여파다. 1000원어치 제품을 팔았다고 할 때 원가·인건비 등을 뺀 영업이익은 78원이고 이 중 실제로 손에 쥔 돈은 63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상장사들의 실적은 뒷걸음질쳤다. 상반기 기준 삼성전자의 매출액 비율(연결 기준)은 전체의 11% 정도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전체의 26%에 달한다. 국내 상장사들이 상반기에 실제로 손에 쥔 돈의 3분의 1 가까이는 삼성전자 몫이라는 얘기다. 삼성전자를 빼고 올 상반기 상장사들의 개별 기준 영업이익을 계산하면 34조 8373억 원에 그친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97%나 줄어든 것이다.
흑자 기업이 줄어든 점도 특징 가운데 하나다. 반기 순이익 흑자 기업은 483곳(80.10%)으로 전년 동기(503곳) 대비 소폭 감소했다. 적자 기업은 120곳(전년 100곳)이었다. 흑자 전환 기업 수보다 적자 전환한 기업이 더 많기도 했다. 흑자 전환 기업은 52개로 7.47%였지만 적자 기업은 78개로 11.21%였다. 적자 전환 기업 가운데는 LG디스플레이가 3278억 원의 손실을 보며 부진이 가장 깊었다. 이어 지역난방공사(-2256억 원), 넷마블(-1723억 원) 순으로 적자가 많았다.
올 상반기 실적 악화가 두드러진 분야는 전기가스업과 건설업이다. 원자재 값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한 탓이다. 금융 업종 중에서는 증권·보험이 부진한 성적을 냈다. 금융업 43개사(개별 제외)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24조 3784억 원, 순이익은 18조 6632억 원으로 각각 8.58%, 7.47% 감소했다. 금융지주(4.86%), 은행(0.67%)은 지난해 동기 대비 순이익이 증가한 반면 증권(-43.44%), 보험(-11.32%)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연결 순이익 규모는 금융지주 11조 2938억 원, 보험 3조 4620억 원, 증권 2조 1575억 원, 은행 1조 2366억 원 등이었다. 운수창고(178.29%), 운수장비(85.65%), 섬유·의복(64.26%), 서비스업(48.19%), 유통업(45.67%)을 비롯해 15개 업종은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문제는 하반기 전망이 어둡다는 것이다. 상반기까지는 수출이 어느 정도 유지되면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지만 미국발 금리 인상과 고물가 우려가 본격화하는 국면에서 이익 감소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경기가 둔화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하반기에는 다수 업종의 기업 실적 저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며 “신용평가사들은 하반기 신용등급 방향성에 대해 상반기와 달리 상향 동력이 약화되고 업종별로 비우호적 사업 환경에 봉착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하반기 실적 둔화가 예상되기는 해도 최근 호황기를 구가하며 재무 완충력이 확보된 업종도 매수 우선순위에 둘 필요가 있다”며 정유·철강·해운 업종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