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로터리] 보건의료 선진국으로 가는 길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세계적으로 으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풀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우리나라 환자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병·의원 방문이 많고 입원도 쉽게 하는 편이다. 조금이라도 심각한 병명이 거론되면 보통 대형 병원 두세 군데를 찾아가 확인하다 보니 유명 상급 종합병원들은 항시 문전성시를 이룬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의사 외래 진료 횟수는 약 17.2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6.8회보다 월등히 높다. 의사를 못 믿어서 그럴 수도 있으나 대개 불필요한 의료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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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시 평균 재원 일수를 살펴봐도 우리나라는 18일로 일본 다음으로 길다. 의료수가와 국민건강보험료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덕에 우리 국민은 몸이 조금만 불편해도 부담 없이 병원을 찾는다. 설상가상 국민 다수가 가입돼 있는 실비 보험으로 보장성이 더 높아졌고 안 쓰면 손해라는 인식까지 더해지며 의료 수요는 증가 일로에 있다. 국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 가운데 우리처럼 환자들이 원하는 병원을 어디든지 제한 없이 방문할 수 있는 나라는 흔하지 않다. 과도한 진료 행위가 이뤄지는 현상도 증가하는 추세다. 불요불급한 검사와 치료의 남발은 국민 의료비 상승으로 귀결된다. 1~3차 의료기관으로 의무화한 의료 전달 체계는 무늬만 남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역대 정부에서는 개선하려는 노력이 미흡했다. 의료보장을 확대한다고 의료수가를 낮춘 결과 환자들의 무분별한 요구에 의사들이 화답하면서 총진료비는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증 환자들이 의료 쇼핑을 하는 동안 정작 중병을 가진 취약 계층 환자들은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제도를 가진 나라가 선진국이다. 동네 병·의원이 중심에 있도록 의료 전달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의료 인력 수급도 이대로는 안 된다. 의사·간호사가 부족하니 숫자를 늘리겠다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고차방정식을 풀어내야 한다. 공공의료기관 혁신도 넘어야 할 산이다. 관할 지역 시장과 군수는 자신과 가족들을 등록해 진료를 받고 시민들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공공의료기관이 돼야 한다. 필수 의료가 붕괴되기 시작한 지 오래지만 제대로 된 정책 없이 땜질 처방만 이따금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3년째에 접어들었는데도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다. 이제부터 감염병 관련 연구개발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이 주무 부처가 돼야 한다. 이과계 인재가 많이 모인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집중 투자한다면 다음 팬데믹 때는 우리도 보건의료 선진국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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