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韓 핵심이익, 타협불가 인식 줘야…'코리아 이니셔티브' 쥘 때"

[기로에선 한중 30년]

<하> '중국통' 홍지연이 묻고 '석학' 서진영이 답하다

'세력 전이' 시대로 전환…예전같은 한중 밀월관계 불가

韓, 보복 있더라도 '명확한 핵심이익' 세워 中 설득 필요

동등한 주권국 관계 구축, 시나리오별 대중 정책 마련을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와 홍지연 미국 미시간대 교수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와 홍지연 미국 미시간대 교수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30년이 지났다. 지난 30년은 1991년 소련 해체로 시작된 탈냉전의 시기였다. 이 기간에 한국과 중국은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전략적 공감대’를 형성해 관계를 발전시켰다. 경제 부문을 넘어 외교·안보까지 협력하는 동반 성장의 정점을 찍었지만 최근 상황은 ‘차이나 리스크’를 걱정해야 할 만큼 변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30년의 탈냉전 세계화가 끝나고 신냉전이 도래한 것이 현실이다. 미중 갈등의 중간에서 등이 터질 만큼 리스크가 높아진 한국은 외교적 명확성을 가지고 ‘코리아 이니셔티브’를 가져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지정학적 지위를 이용해 미국은 물론 중국도 쉽게 뿌리치지 못할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서울경제는 최근까지 홍콩과기대 교수로서 중국 굴기를 직접 경험한 홍지연 미국 미시간대 교수와 국내 중국학 개척자인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의 문답을 통해 한중 관계의 해법을 들었다. 소장 학자와 원로 학자 간에는 한중 관계 30년만큼의 연배 차이가 났지만 대중국 정책에 핵심 이익을 갖고 실리 외교를 추구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한중 수교 30년이다. 경제적으로는 합격점, 외교안보적으로 낙제점 아닌가.

△서진영 명예교수=한중 관계 30년은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밀월 기간을 향유했다. 봄날은 갔다. 전기 30년은 한국과 중국뿐 아니라 미국과도 폭넓은 전략적 공감대가 있었다. 한미중 3국이 상호 협력을 통해 윈윈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황금기였다. 경제는 물론 외교와 안보 측면에서도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구조적으로 어려운 형편이다.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패권 경쟁을 하고 있어 그 사이에 한국과 중국이 과거와 같은 밀월기를 만들 수 없는 형편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 노골화되는 ‘세력 전이(power shift)’의 시대로 전환되면서 한중 양국의 전략 환경에 구조적 변화가 생긴 것이다.

△홍지연 교수=지금까지 한중 관계는 눈부신 경제적 성과 면에서 합격점이다. 다만 개방 당시 미국은 물론 서구권과 일본, 한국 정부 모두 경제적 상호 의존이 안보적인 적대성을 낮추리라는 자유주의적 기대를 걸었지만 아쉬움이 커지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를 중재해주기를 바라는 기대에도 중국의 역할이 크게 미치지 못했다.

-한국은 중국이냐, 미국이냐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서 명예교수=미중 패권 경쟁에서 한국이 중국과 얼마만큼의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자칫 잘못하면 냉전 시대처럼 한중이 적대적 관계로 갈 수도 있다. 반대로 미중 대결과 갈등에도 상당한 범위 내에서 한중이 협력해나갈 영역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중이 동등한 주권국가로서 정상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관련기사



△홍 교수=그동안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양면 전략이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앞으로는 국제정치적으로 이런 여지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유럽 역시 점차 중국(러시아와도) 경제보다는 안보와 가치를 중요시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실리 외교를 했던 독일이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송 중단을 감수하고 중국의 자국 기업에 대한 투자 보증을 거부했다.

-한한령과 같은 사드 보복처럼 중국의 반발이 만만찮다.

△서 명예교수=외교적인 성숙도를 갖추면 한국은 중국과 크게 마찰이 생기지 않고 미중 갈등에도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한중 양국의 핵심 공동 이익을 찾아서 확대해갈 수도 있다. 특히 경제와 안보가 따로 있지 않다. ‘안미경중’식 사고는 순진한 발상이다. 예를 들어 사드가 핵심 이익이 되는 것이다. 3불 1한을 중국과 타협할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설득해야 한다. 보복이 있다면 보복을 감수할 정도로 중국에 타협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외교안보·경제뿐 아니라 문화적 대립도 커지고 있다.

△서 명예교수=21세기 들어 한중이 국운 상승기를 맞아 나타난 게 신민족주의다. 과거와 다른 형태의 자기 자존감을 주장하고 내세우려다 보니 중국은 신동북공정을 전면에 내걸었다. 신동북공정도 중화민족주의의 형태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국내 반중 정서도 한국의 새로운 민족주의 정서 속에 특히 젊은 사람들이 중국을 비판하며 구조화됐다.

△홍 교수=중장년층의 반중 정서가 이념적이거나 북한에 대한 반감에 따른 것이라면 청년층의 반중 정서는 민주주의와 경제·문화적 성장에 따른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특히 중국이 ‘협의민주주의’를 내세워 반한(反韓) 감정의 여론을 정책에 반영하기까지 한다. 이런 측면에서 신민족주의를 지적한 서 교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혐오와 배제가 작동할 수 있는 프레임이 민족주의로 인해 강화된 것이다.

-중국은 멀리할 수도 없지만 극복할 대상인 것은 분명하다.

△서 명예교수=왕도가 없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인 상호 교류와 협력 증대를 통해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게 절실하다. 양국이 동등한 주권국가라는 점을 인식하고 문제를 이해하려는 접근 태도가 필요하다. 반중 의식을 극복해가며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는 문화적 태도가 향후 30년 양국 발전의 전제 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홍 교수=외교 문제상 국가 간 관계에서 정책의 축적이 필요하다. 정권에 따른 편차는 축적을 저해하게 된다. 다각적인 시나리오를 통해 대중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미중 관계도 현실 한계를 인식할수록 대결로만 갈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미중은 협력과 경쟁·대결이 복잡하게 작용할 것이고 한국은 틈새에서 주도권(이니셔티브)을 쥘 수 있다.


송종호 기자·박경은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