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자택 경비·시설물 보수 등 10억원대 비용을 회삿돈으로 지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진그룹 계열사 대표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한진가(家)의 금고지기 역할을 해온 인물로, 앞서 조 전 회장의 횡령·배임 의혹에 가담한 혐의로도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유진현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 및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원모 정석기업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조 전 회장의 고교 후배인 원 대표는 지난 2010년 한진그룹의 부동산을 관리하는 비상자 계열사 정석기업의 대표이사를 맡은 뒤 조 전 회장 등 한진그룹 일가들의 이른바 ‘사금고’로서 역할을 하도록 회사를 운영한 것으로 조사됐다.
원 대표는 조 전 회장의 서울 종로구 자택 경비 용역대금과 자택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설치와 놀이터 공사 등에 쓰인 비용 등을 정석기업이 대신 내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판결문에 따르면 원 대표는 2014년 1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조 전 회장의 자택 경비 용역대금 8억7800여만원, 2012년 1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조 전 회장의 자택 관리소장 급여·법인카드 대금 2억500여만원 등을 정석기업이 대신 납부하도록 지시했다. 또 조 전 회장의 자택 화단 모래놀이터 공사비도 정석기업 소유 빌딩의 보수공사를 한 것처럼 비용 처리하는 등 조 전 회장이 내야할 공사비 4100여만원이 정석기업 자금으로 결제됐다.
재판부는 “원 대표는 11억원이 넘는 거액의 회사 자금을 계열사 총수의 개인적인 용도로 임의 사용해 정석기업에 재정적인 손해를 끼쳤다”며 ”총수 일가의 사택에 경비원을 파견하면서 추후 생길 수 있는 법적인 문제를 피할 목적으로 정석기업 소유 빌딩에 한 것처럼 실제와 달리 회계처리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범행의 수단과 방법이 치밀하게 계획됐고 그 과정에 장부조작이 이뤄지는 등 범행 수법이 매우 불량하다”며 “범죄 피해 회복도 대부분 수익자에 불과한 조 전 회장이 개인적으로 한 것이고 정작 범행을 저지른 원 대표가 기여한 부분은 전체 피해액의 1%도 되지 않아 양형사유로 고려되는 전형적인 ‘피해 회복’에 해당한다고 보기 충분치 않다”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정석기업이 원 대표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고,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인정하면서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는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 판시했다.
앞서 원 대표는 조 전 회장이 차명약국을 개설하고 항공기 장비·기내 면세품 중개수수료를 가로채는 과정에서 공범 역할을 한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져 2020년 11월,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조 전 회장이 인하대병원 재단 이사장 시절 원 대표를 통해 일명 ‘사무장 약국’을 열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불법으로 타낸 요양급여는 1522억원으로 조사됐다.
원 대표와 검찰 양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해당 재판의 2심 선고공판은 오는 9월 22일 서울고법 형사5부(서승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