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배터리 등 역내에서 거래되는 제품의 생산·이용·재활용 이력과 환경 규제 이행 여부까지 공개하도록 하는 정책을 도입한 가운데 한국도 제품에 대한 디지털 이력 추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24일 발표한 ‘EU 배터리 여권으로 살펴본 이력 추적 플랫폼의 필요성’ 보고서에 따르면 EU는 배터리의 생산·이용·폐기·재사용·재활용 등 전(全) 생애주기 정보를 디지털화하는 ‘배터리 여권’(Battery Passport) 제도를 2026년부터 시행한다.
이를 통해 EU는 배터리 재활용을 촉진해 안정적인 순환 경제를 구축하는 동시에 EU의 환경 규제에 부합하는 배터리가 역내에서 거래되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EU는 역내에서 거래되는 모든 제품에 대한 '디지털 상품 여권'(Digital Product Passport) 도입 계획을 발표하는 등 디지털 이력 추적 시스템의 대상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추세다.
독일, 일본 등 주요 국가들도 단계별 제품 이력 데이터 축적을 통한 디지털 순환경제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독일은 EU 회원국 중 가장 먼저 배터리 여권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BMW, 유미코어, 바스프 등 11개 기업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배터리 정보를 수집·활용하는 ‘배터리 패스’(Battery Pass) 프로젝트에 착수한 상태다. 일본도 지난 4월 민간 주도의 배터리 공급망 협의회(BASC)가 EU 배터리 여권과 호환 가능한 ‘일본식 배터리 공급망 디지털 플랫폼’을 설계하며 EU의 배터리 여권 제도 도입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가장 앞선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2018년부터 ‘배터리 이력 추적 플랫폼’(EVMAM-TBRAT)을 구축해 전기차 배터리의 재활용 책임·이행 여부를 감독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지난해 8월부터 배터리 재사용 분야 기업에 대해 배터리 정보 입력을 의무화함에 따라 배터리 이력 정보가 빠른 속도로 축적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신에너지 차량 등록 대수는 지난해 1월 기준 406만7000대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도 EU의 배터리 여권 제도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의 정책을 벤치마킹한 한국식 배터리 이력 추적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희영 무협 연구위원은 “배터리뿐만 아니라 모든 상품으로 이력 추적이 확대될 전망인 만큼 정부는 관련 디지털 플랫폼 구축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을, 공급망 내 기업들은 재활용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이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