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앞세워 공급망 재편을 서두르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의 ‘탈(脫) 중국’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주요 광물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들여오는 현 시점에서 당장 수입처를 바꿀 수는 없지만 국내 소재 업체들과의 협업과 폐배터리 사업 강화를 통해 공급망 다변화가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23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수산화리튬의 수입액 17만 4829만 달러 가운데 중국 수입액은 14억 7637만 달러로 84.4%를 차지했다. 2018년 64.9%였던 수산화리튬의 중국 수입 의존도는 매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83.8%를 기록했다. 코발트의 중국 수입 비중은 2018년 53.1%에서 올해 81%까지 올랐으며 같은 기간 천연 흑연도 83.7%에서 89.6%까지 늘어났다.
중국에 대한 광물 수입 의존도가 치솟으며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최근 서명한 IRA는 중국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면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북미 지역이나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채굴 및 가공한 광물의 비율이 내년에 40%이상, 2027년 80%에 도달해야 한다. 주요 광물의 중국 수입 비중이 90%에 육박하는 국내 업체들로서는 당장 중국을 대체할 수입처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도 현지 업체들이 채굴과 제련을 사업화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 이들과 계약을 맺는 형태로 공급망을 넓힐 수는 있다”면서도 “행정적인 절차도 복잡하고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데만 집중하기보다 국내 소재 업체들과 협업해 중국산 소재를 국산 제품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병행한다는 전략이다. 에코프로비엠은 양극재·음극재의 주요 원료를 자체 개발해 소재를 생산하고 있다. 에코프로비엠은 전구체 생산 계열사인 에코프로머티리얼즈를 통해 전구체를 제조·가공한 후 양극재를 만들어 삼성SDI·SK온에 납품한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은 포스코케미칼에서 자체 제조한 천연 흑연 음극재도 공급받고 있다. 포스코케미칼은 중국이 장악한 인조 흑연 시장에도 뛰어들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차세대 음극재 기술인 실리콘 음극재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이 실현되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더 안정적으로 원소재를 공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SDI는 자회사 에스티엠과 합작사 에코프로이엠을 통해 국산 양극재 비중을 확대할 방침이다.
폐배터리 시장은 국내 배터리 3사가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분야다. 폐배터리에서 광물을 추출해 다시 배터리를 만드는 재활용 사업이 안정화되면 수입에 의존하지 않아도 원소재를 일정 분량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LG화학은 미국 리사이클링 업체 ‘리사이클’에 투자해 배터리 원재료를 재활용하기로 했다. 삼성SDI는 폐배터리 재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천안·울산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스크랩 순환 체계를 구축했다.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스크랩을 재활용 전문 업체가 수거한 뒤 공정을 거쳐 황산니켈·황산코발트 같은 광물 원자재를 추출하는 형태다. SK온과 미국의 완성차 포드가 세운 합작법인 ‘블루오벌SK’ 사업장에서 발생한 폐배터리는 재활용 업체인 레드우드 머티리얼즈의 기술을 활용해 다시 금속 형태로 배터리 제작에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