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바이오헬스·메타버스·플랫폼 등 고성장이 기대되는 미래 신산업을 영위한 비상장사들에 대한 직접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올 들어 증시 부진에 따른 거래 대금 및 수수료 감소, 운용 손실 등으로 증권사 실적에 ‘경고등’이 켜지면서 이익 기반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성장성이 큰 스타트업들로의 선제적 투자를 통해 보다 높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24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은 올 상반기에도 비상장사 투자에 활발히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증권사들이 신규 출자한 기업 목록을 살펴보면 콘텐츠 제작 관련 스타트업들이 목록을 대거 차지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올 상반기 동안 단일 비상장사들에 총 110억 원 규모를 신규 출자한 대신증권은 올 4월 아티스트 지식재산권(IP) 플랫폼 ‘원더월’을 운영하는 노머스에 10억 원을 투자했다. 원더월은 국내외 유명 아티스트들의 IP를 활용한 교육 콘텐츠뿐 아니라 앨범·콘서트 등을 제작해 순조롭게 이익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대신증권은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 업체인 갤럭시코퍼레이션에도 10억 원을 출자했다. 해당 업체는 연예인 IP를 기반으로 가상현실(VR) 아바타와 콘텐츠를 메타버스에 구현하는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역시 메타버스 등 VR을 포함한 콘텐츠 생산 업체에 대한 투자에 나섰다. 한국투자증권은 올 4월 맞춤형 메타버스 공간을 제작하는 와이드브레인에 10억 원을 신규 출자했다. 와이드브레인은 VR·증강현실(AR) 콘텐츠 기술을 기반으로 컴투스플랫폼 등 업체들과 다양한 기술 협약을 맺고 있다. 미래에셋증권도 올 초 VR 웨어러블 기기를 제작하는 비햅틱스에 15억 원을 투자했다. 비햅틱스는 가상현실 콘텐츠 사용 시 촉감 등을 활용해 실감성을 높이는 햅틱 슈트 등을 제작해 선보인 바 있다.
증권사들은 바이오·헬스케어 벤처들에도 주목했다. 메리츠증권은 4월 메타파인즈에 8억 원가량을 투자한 데 이어 5월에는 업테라에 10억 원을 신규 출자했다. 두 업체 모두 신약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바이오 업체로 메타파인즈는 대사 항암제를, 업테라는 표적 단백질 분해 기술에 기반한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5월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 전문 업체인 씨어스테크놀로지에 20억 원을 출자했다. 환자 모니터링을 위한 웨어러블 기기들을 개발하며 국내 식약처, 미 식품의약국(FDA), 유럽의료기기인증(CE) 등을 확보하고 있다.
소비 과정을 ‘원스톱’으로 압축하는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투자도 활성화됐다. 미래에셋증권이 올 2분기 15억 원 규모를 투자한 트리즈커머스는 인플루언스 전속 계약 제도를 활용해 커머스 부문에서 높은 수익성을 창출하고 있다. 사업을 시작한 2015년부터 연평균 10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KB증권은 중고차 원스톱 상품화 플랫폼 스타트업에 10억 원을 출자했다. 체카는 높은 품질의 중고차 거래를 보장하는 플랫폼 ‘레몬’을 7월 출시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증권사들이 미래 고성장이 기대되는 신산업 벤처 투자에 나서는 것은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 등의 주관사로 참여해 수수료를 받는 것을 넘어 직접투자를 통해 높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증권사들은 증시 호황이 지속됐던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는 등 성과를 거뒀지만 올 들어 증시 부진에 따른 거래 대금 및 거래 수수료 감소, 운용 손실 등으로 이익 수준이 반 토막 났다. 이에 성장성이 튼튼한 비상장사에 대한 장기 투자를 통해 보다 높은 이윤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증권사들은 신기술 투자조합 등을 통해서도 벤처 투자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스타트업의 상장 이후 투자 회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도 보지만 향후 장기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술을 갖춘 기업에도 주목한다”며 “10개 중 1~2개 정도만 성공해도 투자 수익이 대폭 불어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