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전기차 보조금 손 볼 때다

유창욱 산업부 기자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는 움직임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국내 업계에는 악재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해외 경쟁사가 부럽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발효되자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가 밝힌 심경이다. IRA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세부 내용에는 미국 전기차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드러난다.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만 세제 혜택을 지급하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이 조항으로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EV6 등 미국에서 판매 중인 모든 국산 전기차는 약 1000만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업계에서는 매년 10만 대가량의 국산 전기차 수출에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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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은 전기차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자국 이익을 우선하는 보호주의로 돌아서고 있다. 중국은 자국 기업이 주로 생산하는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에도 보조금을 지급 중이며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저렴한 소형 전기차를 주로 생산하는 자국 기업을 위해 고가의 수입 전기차에 불리한 보조금 지급 기준을 마련했다. 인도네시아와 남미는 니켈과 리튬 등 배터리 생산에 필수적인 원자재 수출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고 자원을 전량 수입해야 하는 국내 제조사에는 넘어야 할 장벽이 점차 늘어나는 형국이다.

반면 우리 정부의 전기차 정책은 국내 기업 우대와는 거리가 있다. 가격 요건을 충족하기만 하면 국산차와 수입차를 가리지 않고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어서다. 이 제도를 이용해 중국산 전기버스와 트럭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국내 시장점유율을 꾸준히 늘려가는 반면 국내 제조사가 생산한 고급 전기차 모델은 보조금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서 비우호적인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동차 업계가 되레 한국에서 역차별을 받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제는 우리 정부도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관점에서 보조금 정책을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전기차 보급 속도에 치중하다 국내 산업 생태계를 보호하지 못하는 과오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유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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