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사범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엄벌주의 기조가 필요합니다.”
마약 수사에서 뼈대가 굵은 한 고위 검사의 말이다. 그가 마약 사범에 대해 ‘일벌백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투약 등 마약 범죄가 한 사람의 인생은 물론 그가 속한 가정이나 직장 등까지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 마약 투약이 제2, 제3의 추가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무조건적인 ‘온정주의’보다는 엄벌주의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 ‘마약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해도 의지만으로 어렵다’는 점도 엄벌주의가 필요한 이유로 꼽는다.
하지만 현실은 현장의 목소리와는 정반대 모습이다. ‘2021년 마약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구공판·약식으로 재판에 넘겨진 마약 사범은 4199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44%(2089명)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마약 사범 비중은 2019년 41%(1723명)에서 2020년 42.9%(1642명)로 해마다 증가 추세다. 1심에서 단순 벌금형이 선고되는 비중도 2019년 3.3%(138명)에서 2020년 3.7%(140명)에 이어 지난해는 4.3%(205명)로 늘었다. 마약 사범 2명 가운데 한 명은 투약·소지, 매매·알선, 수출입·제조 등을 저지르고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 받으면서 풀려나고 있는 셈이다. 20·30대 젊은 층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마약 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단속 강화와 동시에 양행 기준상 감경 요인을 바꾸는 등 법원의 인식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현행 마약 범죄 양형 기준에서는 감경 요소로 ‘형사처벌 전력 없음’이 포함돼 있다. 또 투약이나 소지 혐의의 경우 ‘마약 중독자의 자발적·적극적 치료 의사’ 역시 형을 낮출 수 있는 요인으로 명시하고 있다. 마약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초범이거나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겠다’는 의사를 피력하면 처벌 강도가 한 단계 내려갈 수 있는 것이다.
사건에 따라서는 법원의 선처가 필요한 때가 있을 수 있다. 법률상으로만 판단할 때는 유죄일 수 있으나 여러 정황으로 봤을 경우 이른바 ‘정상 참작’ 등 피의자 심정을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약 범죄는 다르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그릇된 온정주의는 자칫 미국 범죄학자 조지 켈링과 정치학자 제임스 윌슨이 1982년 내놓은 ‘깨진 유리창 이론’만 현실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를 거리에 방치하면 사회의 법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로 읽혀 더 큰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마약 사범에 대한 ‘선처’는 제2, 제3의 범죄만 양산할 수 있다. 법원이 마약 범죄에 대한 인식을 바꿀 때 ‘마약 청정국’이라는 위상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마약은 끊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수사 일선의 목소리가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