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일본에서도 고물가에 대응해 임금을 인상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오랜 기간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소비 위축을 끊어낼 계기가 될지 주목되는 동시에 임금 인상이 일회성에 그칠 경우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유리 제조 업체 아사히글라스(AGC)는 지난달 기본급을 3.92% 올렸다. AGC가 전 직종을 대상으로 기본급을 인상한 것은 2008년 이후 14년 만이다. 정보기술(IT) 대기업 오쓰카상회도 2000년 상장 이후 처음으로 전 직원의 기본급을 인상했다. 인상 폭은 2.72%로 정규직과 계약직 모두 같다.
반도체 관련 기업인 스미토모화학·디스코 역시 각각 3.7%, 8.5%의 임금 인상(정기 승급분 포함)을 실시했다. 일본 노동조합총연합회 렌고가 올해 춘계 노사 교섭 결과를 토대로 집계한 기업들의 평균 임금 인상률은 정기 승급분을 포함해 평균 2.07%로 전년 대비 0.29%포인트 높았다. 이 밖에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가전제품 판매 기업 노지마 등은 직원들에게 물가 상승 부담을 낮추기 위한 일시금을 지급하고 있다.
임금 인상의 배경은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인플레이션이다. ‘저물가 국가’로 알려진 일본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는 전년 동기 대비 2.4% 올라 7년 7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여기에 지난 회계연도에 기업들의 실적이 호조를 보인 것도 임금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신문은 “2021년 3월~2022년 3월에 최고 순이익을 낸 상장기업이 전체의 30%에 달했다”며 “기업의 임금 인상 여력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오랜 디플레이션에 시달려온 일본에서는 기업들이 임금 인상을 꺼리고 그 결과 소비가 위축되며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지난해 일본의 실질임금은 구매력평가(PPP) 기준 4만 849달러로 집계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24위에 그쳤다. 2000년과 비교한 임금 증가율은 7%로 미국(30%), 독일(19%)에 크게 뒤처졌다. 이 때문에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권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다만 신문은 “가을 이후 본격화하는 내년도 노사협상에서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을 따라잡지 못하면 소비가 위축돼 기업의 수익이 감소하는 악순환에 또다시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