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전력공사 등 부채가 급증한 주요 공공기관에 5년간 34조 원 규모의 부채 감축과 자본 확충에 나선다. 사실상 나랏빚인 공공기관 채무가 올해 630조 원을 넘어서는 등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기획재정부는 31일 최상대 기재부 2차관 주재로 열린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이런 내용의 ‘2022~2026년 재무위험기관 재정 건전화 계획’과 ‘2022∼2026년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을 보고했다. 앞서 정부는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선 한전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가스공사 등 14곳을 재무위험기관으로 분류한 바 있다. 이번 계획의 핵심 목표는 이들 기관의 부채비율을 5년 내 200% 아래로 낮추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재무위험기관에 34조 원 규모의 부채 감축과 자본 확충을 추진하기로 했다. 기관별로 개선 규모를 살펴보면 한전이 14조 3000억 원으로 가장 크다. 한국남동발전을 포함한 발전자회사 5곳의 목표치(4조 8000억 원)를 더하면 개선 규모는 20조 원에 달한다. 한전이 5월 내놓은 6조 원 규모의 자구안보다 목표치를 세 배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신규 투자 계획을 조절해 4조 원 이상을 추가로 마련하고 토지 등 자산을 재평가하면 자본금 또한 늘릴 수 있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LH는 사옥과 사택을 팔고 신규 출연을 제한해 9조 원 규모의 재정을 건전화한다. 가스·광해광업공단·석유·석탄 등 자원 공기업은 3조 7000억 원, 지역난방공사·한국수력원자력·철도공사가 2조 2000억 원 만큼 허리띠를 졸라맨다.
정부가 재무 개선을 서두르는 것은 공공기관의 부채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장기 재무 계획에 따르면 올해 전체 공기업·준정부기관의 부채는 지난해보다 82조 2000억 원 늘어난 632조 800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채비율은 187.6%로 전년보다 25.8%포인트 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재무 개선 노력이 없을 경우 2026년 부채 규모는 729조 3000억 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이번 계획을 통해 이보다 24조 7000억 원 줄어든 704조 6000억 원 수준에서 부채를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채비율 또한 개선 전 180.1%보다 10.7%포인트 줄어든 169.4%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정부의 한 인사는 “국제통화기금(IMF) 미션단이 한국 경제를 평가할 때면 반드시 살피는 것 중에 하나가 공공기관 부채”라면서 “외인(外人)들은 공공기관의 빚을 사실상 국가 부채로 보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대해진 공공기관을 혈세로 떠받치는 상황이 한계에 달한 점도 고려됐다. 정부가 현재 공공기관의 사업비와 운영비 명목으로 투입하는 돈은 한 해 100조~12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정부 예산의 20%에 달하는 몫이다. 기재부는 “에너지 가격 급등 등 악화한 경영 환경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 부채비율이 올해 급격히 증가한 뒤 완연한 감소세를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부의 개선 목표가 다소 낙관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가 재무 상황을 전망하면서 공기업 수익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공공요금이 정상적으로 조정된다는 점을 전제했다는 지적이다. 가령 고물가 기조가 지속될 경우 당초 계획된 전기료나 가스요금 인상이 미뤄져 공기업의 재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한편 2026년까지 39개 기관의 총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49∼52%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39개 기관은 올해 14조 3000억 원 당기순손실을 봤으나 내년 이후에는 흑자로 전환해 연평균 8조 500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채무 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배율은 2023∼2026년 평균 2.1 수준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