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기자의 눈] EU의 딜레마


‘죄수의 딜레마’는 국제정치에서 흔히 차용되는 이론 중 하나다. 두 죄수가 서로 협력할 때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개인의 욕심을 앞세우면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만일 죄수가 2명이 아닌 27명이라면. 각자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지게 마련이다. 이것이 현재 유럽연합(EU)이 마주한 상황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로 EU는 총 여섯 차례에 걸쳐 러시아에 대한 제재 조치를 내렸다. 국제 회의도 수시로 열어 러시아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다. 얼핏 단단한 결속을 이룬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저마다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회원국들의 팽팽한 신경전과 시간만 잡아먹는 협상 교착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 직후부터 요청해 온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는 6월이 돼서야 헝가리 등 반대 국가를 간신히 설득해 제재안에 포함할 수 있었다. 러시아 시민에 대한 비자 발급 중단안은 북유럽 국가들과 친러 국가들 간 의견 차로 지지부진하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경제 동맹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에너지를 무기화한 러시아 앞에서 균열은 쉽고 협력은 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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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물가는 연일 폭등하고 생활비 부담에 시달리는 시민의 불만은 유럽 전역에서 폭발하고 있다. 수일 전 체코에서는 치솟는 에너지 가격에 분노한 시민 7만 여 명이 거리로 나와 EU 탈퇴 및 러시아와의 가스 계약 체결,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 반대를 외쳤다. 독일 각지에서도 우크라이나 지원을 멈추라는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이탈리아의 한 극우 정당 대표는 자국민의 고통을 이유로 대러 제재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유럽행 가스관을 걸어 잠그면서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은 더욱 높아 보인다. 이미 지난달 유럽 최대 에너지 수출국인 노르웨이가 자국 내 전력 공급 안정을 위해 전력 수출량을 제한한다고 선포하며 ‘눈치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누구라도 이탈하는 순간 대러 제재는 힘을 잃고 EU의 결속은 무너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노림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장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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