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에 한파가 불면서 연말까지 ‘돈맥경화’가 이어질 경우 시행사나 시공사가 연쇄도산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천 미추홀구 주택정비사업을 맡은 C사의 경우 이미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진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미분양이 쌓여 있는 대구와 인천 구도심, 수원 등지가 위험 지역으로 꼽힌다.
6일 투자은행(IB)과 시행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부동산 PF 시장에서는 지난해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한 신규 대출 조건이 통용되고 있다. 지난해 4분기까지만 해도 중견 시행사가 PF 대출을 받을 경우 시공능력평가 및 신용등급 최상위 시공사의 책임 준공 약정이 있으면 연이율은 1.0%포인트까지 낮게 책정됐다. 그러나 지금은 재무구조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시공사가 특정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려도 이율 변동이 없을 정도로 대출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신규 대출뿐 아니라 기존 공사를 위해 받은 PF 대출의 연장도 한층 엄격해졌다. 시행사 대표 A 씨는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인데 대출 만기가 돼 연장을 요청했더니 신규 대출 때보다 서류가 곱절로 많아졌다”면서 “보낸 서류를 그 다음 날에 다시 또 보내달라 하고 그 다음 주에는 현장 실사를 나왔다”며 연초와는 달라진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처럼 까다로워진 대출은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대비한 금융기관의 선제적 대응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올 7월 여신전문사·저축은행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난 뒤 “건설 원가 상승 및 부동산 가격 하락 등으로 PF 사업장의 공사 중단·지연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현장의 전수조사를 주문하자 대출의 문턱이 갑작스럽게 높아졌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한 증권사 IB 부문 고위 임원은 “금감원장의 발언 이후 상부에서 ‘올 하반기까지 인생을 걸고 추진할 딜(거래)이 아니면 아예 손대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을 정도로 부동산 PF 참여를 꺼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해당 발언은 금리상승과 원자재가격 상승 등으로 부동산경기가 더욱 둔화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PF대출을 취급한 금융사에 리스크관리 강화를 강조한 것”이라며 “PF대출 취급을 (전면) 중단하라는 의미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급작스럽게 부동산 PF 문이 닫히면서 신규 사업은 물론 기존 사업의 안정성도 깨져버렸다는 것이다. 시행사들 가운데 이미 사업 부지를 확보하는 단계까지 온 곳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개는 분양 성과가 좋은 다른 사업장에서 발생한 수익을 끌어다 만기 연장이 안 된 현장의 이자만 갚으며 디폴트를 미루는 식이다. 신규 사업은 줄줄이 백지화되고 있다. 대형 시행사 전무 B 씨는 “통상 사업을 추진할 땅을 확보하고 구입하는 데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는데 토지 소유권이 시행사로 넘어오는 기간에 PF 대출이자가 크게 높아지면서 자금난에 시달리는 회사가 많다”며 “우리 회사도 주거·비주거 가릴 것 없이 PF 대출이 어려워 올해 하반기 계획한 5개 사업을 모두 백지화했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운용되는 부동산 PF 대출 자금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구조적 안정성을 보강한 것들이지만 갑작스럽게 이 시장으로 흘러드는 자금이 끊기는 ‘돈맥경화’가 발생한다면 작은 충격도 강력한 파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연말까지 자금 경색이 지속될 경우 시행사나 시공사의 연쇄도산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행사 D사의 한 관계자는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된 오피스텔만 놓고 보면 수도권에도 최근 3개월 내 분양 물량이 전체의 5%밖에 안 되는 곳도 있다”며 “이런 현장은 대출 만기가 와도 계획대로 자금을 상환할 수가 없어 디폴트 상태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업계에서 느끼는 위기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증권사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4.7%로 지난해 말 3.7%에서 1%포인트 증가했다. 2017년 말 기준 연체율인 6.8%보다는 낮지만 2019년 1.3%와 비교하면 약 3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최근 4년간 부동산 PF 대출의 연체 잔액도 늘어났다. 2019년 789억 원이던 연체 잔액은 2020년 1757억 원, 2021년 1691억 원으로 꾸준히 증가해오다 올해 1분기에는 1968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