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도 넘은 당정의 포스코 경영권 개입…흑심 있나 [뒷북비즈]

서민우 차장

49년 만의 공장중단…정상화 매진 엄중한 상황

당정은 '대선 전리품' 여기고 수뇌부 흔들기 시도

경영진 책임은 이사회와 주주가 따지면 될일

외국인 지분 절반 넘어, 관치(官治) 계속될 경우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 확산


포스코에 또다시 ‘관치 경영’의 망령이 드리우고 있다. 태풍 피해를 입은 포항제철소 공장의 정상화를 위해 전사가 매달리는 엄중한 상황인데도 정부와 여당의 경영 개입 시도가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이전에도 포스코에 여러 정치 외압이 있었지만 이번 경우처럼 당정이 공개적으로 나서 경영진의 책임을 언급한 적은 없었다”며 “당정이 권력 다툼도 모자라 이제는 민영화된 기업 총수 자리까지 대선 승리의 ‘전리품’으로 여기고 탐내고 있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18일 철강 업계에 따르면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된 ‘철강수급조사단’이 16일 포항제철소를 방문해 1차 조사에 돌입했다. 정부는 철강 산업의 피해 상황과 철강 공급 영향을 진단하는 것이 조사단의 목적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이미 관가에서는 포스코가 태풍 피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는지, 포스코가 피해 상황을 축소 보고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당의 압박은 더욱 노골적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6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태풍 피해가) 충분히 예견됐는데 마땅히 준비했어야 하는 대비책 마련에 소홀했던 것이 드러난다면, 이에 대해 경영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정의 이 같은 움직임은 포스코의 경영에 개입하는 시도로 비춰진다. 더욱이 지금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것은 시점과 방법 모두 잘못됐다.

기업 경영은 예측보다 대응이 중요하다. 예측은 늘 틀린다. 예상치 못한 환경에 얼마나 빨리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존폐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포스코의 대응은 빨랐다고 보는 게 맞다. 포스코는 제품 생산의 핵심인 압연 라인이 침수되자 즉각 사태를 파악했고 올 연말까지 생산 라인을 복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오히려 공장 정상화에 온 힘을 쏟아야 할 때에 당정이 그룹 수뇌부를 흔들면서 피해 복구의 걸림돌이 되는 상황이다. 제철소와 인접한 냉천의 범람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지방자치단체인 포항시의 책임이 더 크다.



포스코는 민간 기업이다. 회장은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산하의 최고경영자(CEO)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하고 선임한다. 경영과 관련한 모든 의사 결정은 이사회가 주도하고, 기업의 주인들이 모인 주주총회에서 최종 승인을 받는다. 포스코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경영 활동을 하는 기업들의 공통 사항이다. 정부 고위 관료 또는 정치인이 자연재해의 책임을 따져 경영진을 문책할 수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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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당정이 과거의 ‘잘못된 관례’에 근거해 포스코 경영에 개입하려고 한다고 지적한다. 포스코는 창사 이래 현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이전까지 8명의 회장이 모두 중도에 낙마했다. 2000년 민영화한 이후에도 이 가운데 4명(유상부·이구택·정준양·권오준)이 연임에 성공하고도 정부가 바뀌면서 옷을 벗었다. 민영화 이후 2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정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민간 기업의 회장 자리가 ‘과거에 그랬다’는 이유만으로 정치권의 논공행상 자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포스코는 국내에서 가장 앞선 지배구조 시스템(한국기업지배구조원 평가 A+ 등급)을 갖춘 기업으로 꼽힌다. 외국인 지분(53.94%)이 절반을 넘는다. 전 포스코 사외이사출신인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포스코는 민영화한 기업이어서 지배구조 선진화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정부 지분이 0%인 민간 기업의 회장 자리를 정부와 정치권이 좌지우지하는 것을 외국인투자가가 본다면 우리나라 자본주의 기업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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