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길에서 주웠다


- 강서연


섬진강변을 따라 걷는 산책길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진 고라니 발자국을 주웠다

구슬은 빠져나가고 틀만 남은 브로치

강과 들녘의 풍경을 여미고 있는 이것은

길이라는 순한 눈동자의 흔적이다

질주를 탁본한 천연 주얼리이다


바람이 몸을 깎아 브로치 빈 틀에 넣어보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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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라도 한차례 내리고 나면

머무른 고라니 발자국에도

넘칠 듯 그렁거리는 에메랄드빛 보석 알알이 박혀 들겠다

세상의 길이란 길은 모두 둥근 기울기로 흘러

개망초도 강아지풀도 둥그런 발등으로

구례의 서쪽 끝까지 걸어가겠다





흔하고도 귀한 걸 주우셨군요. 우리나라 농가에선 환영받지 못하지만 세계적으로 귀한 멸종 위기종 물 사슴이라죠. 한반도에 사람이 들어오기 이전부터 살던 선주민이었죠. 콘크리트 산책로를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로 알았을까요. 유명 배우들처럼 발자국을 남기고 갔군요. 함께 살던 생태계 스타들은 손도장도 남기지 않고 어디로 갔을까요? 호랑이와 표범과 대륙사슴과 늑대와 여우가 자국을 남겼더라면 브로치가 다채로웠을 텐데요. 우리 곁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고라니가 대표로 인류세의 화석에 흔적을 남겼군요.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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