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고강도 통화 긴축의 여파로 국내 금리 수준도 당분간 가파른 상승세가 불가피해지면서 가계와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우리나라 민간 부채가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2배를 넘어선 상황에서 금리 인상이 가속화될 경우 가계·기업의 이자 부담이 빠르게 늘면서 향후 금융 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은행이 22일 발표한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명목 GDP 대비 민간 신용(가계·기업의 부채 잔액 총합)은 221.2%로 집계됐다. 이는 1분기(220.9%)보다 0.3%포인트 오른 것으로 또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액수로는 가계 신용이 1869조 4000억 원, 기업 신용이 2476조 3000억 원으로 조사됐다. 가계 신용 비율은 기준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강화 등으로 1분기 105.5%에서 2분기 104.6%로 다소 줄었지만 기업 신용 비율은 같은 기간 115.3%에서 116.6%로 오히려 높아졌다. 기업의 시설·운전자금 대출 수요, 금융기관의 기업대출 취급 노력 등의 영향으로 기업대출 증가세가 강해졌다는 게 한은 측의 설명이다. 실제 기업대출 증가율은 1분기 14.7%에서 2분기 15.5%로 상승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민간 부채 수준이 높은 상황에서 물가 상승 압력과 그에 따른 금리 상승은 대출자의 채무 상환 능력에 부담을 주고 금융시장 변동성도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가파르게 늘고 있는 자영업자 대출도 또 다른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2분기 기준 자영업자 대출은 994조 2000억 원으로 1000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5.8%나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 금융 지원 조치가 연장되면서 높은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다. 한은은 금리 인상 기조가 지속되면 연체 가능성이 높은 저소득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부실 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금리가 오르면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으로 불리는 청년층 과다 차입자의 부실 위험을 빠르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변동금리형 대출 중심의 부채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이자 상환 부담 가중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청년층은 코로나19 이후 과도한 주택 관련 대출 차입으로 소득대비부채비율(LTI)이 높아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역시 빠르게 상승한 상태다. 기준금리가 1%포인트 올랐을 때 대출금을 5억 원 이상 보유한 청년층 차주의 연체율은 0.278 수준이지만 과다 차입한 청년층은 1.423까지 급등한다.
가뜩이나 기업대출이 늘어난 상태에서 추가로 금리가 더 오르면 한계기업(3년 연속 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이 다시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은은 “기업 신용의 높은 증가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외 경기 둔화, 대출금리 인상, 환율,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경영 여건이 나빠질 경우 기업 전반의 이자 상환 능력이 약해져 올해 한계기업 비중은 전년보다 상당 폭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기준 한계기업 수와 차입금 비중은 매출 증가와 수익성 회복에 힘입어 각각 14.9%와 14.8%로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수준까지 하락한 상태다.
하지만 대출금리가 오르고 환율,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영업 비용 증가 등 최악의 경영 여건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한계기업 수와 차입금 비중은 18.6%와 19.5%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한은은 “한계기업의 비은행권 자금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대내외 충격 등으로 한계기업 부실이 현재화되면 상대적으로 자본이 취약한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관련 부실이 금융 시스템 전체로 파급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은의 우려를 반영하듯 금융불안지수(FSI)는 이미 ‘위험’ 단계 진입에 임박한 상태다. 금융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실물·금융지표를 바탕으로 산출되는 FSI는 7월(18.8)과 8월(17.6) 17~18을 오가며 위험 단계(22 이상)에 근접하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