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동십자각] 한글날 레퀴엠

이지성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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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면 4일이 맞는데 왜 3일인지 이해할 수 없네요.” “심심하게 사과하겠다는 건 진정으로 사과할 마음이 없다는 의미죠.” “삶과 고인의 명복을 빌어야지 뭘 삼가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2011년 8월 31일은 국문학계에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1986년 외래어표기법이 제정된 지 25년 만에 ‘짜장면’이 ‘자장면’과 함께 복수 표준어로 등재된 것이다. 국민들은 “이제야 짜장면이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며 열렬히 환호했다.

전 세계 언어 6700여 개 중 한국어는 사용자 수에서 12위라고 한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문자가 없어 한글을 채택한 인도네시아 소수 민족 찌아찌아족 7만여 명이 있다. 한국의 경제력과 한국어의 사용자가 엇비슷하니 딱히 실망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언어학자들은 지구상의 거의 모든 소리와 언어를 표현할 수 있다는 한글의 상품성에 찬사를 보낸다. 글자와 발음이 대부분 연동되고 없는 발음은 만들면 되니 이보다 간편한 언어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완벽한 언어는 없겠지만 한글의 활용성과 편의성은 탁월하다.



스마트폰 시대에서도 가장 오·탈자를 적게, 가장 빨리 입력할 수 있는 언어라고 하니 한글의 경쟁력은 남다르다. 조선의 왕 27명 중 세종을 유일하게 대왕으로 부르는 것에도 한글 창제의 공이 클 테다. 유엔은 문맹 퇴치를 위해 1989년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도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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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국민은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을 보며 자부심을 느낀다. 해외 유명인들이 한글이 적힌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 일도 흔한 일이 됐다. 한글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과 애정은 참으로 반갑다.

그러나 한국어는 어렵다. 외국이 아닌 국내에서 처한 상황이 어렵다. 젊은 세대와 중장년 세대가 우리말을 대하는 간극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서다. 꼰대 세대는 어려운 말을 굳이 사용하고 청년 세대는 문해력이 너무 부족하다.

미국 순방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엊그제 회담장을 나오다 한 말을 두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발언의 진위를 놓고 정치권이 싸우는 사이 포털 사이트에는 ‘욕설’과 ‘비속어’가 주요 검색어로 올라왔다. 기사에 나온 욕설과 비속어의 뜻이 궁금한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한글 문해력의 비극에는 한글학자들의 잘못이 크다. 초등 900개와 중등 900개를 합쳐 한자 1800개만 배우면 우리말은 물론 같은 한자권인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울 때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진다. 그런데도 한문은 2000년 시작된 제7차 교육 과정에서 필수과목의 자격을 잃었다.

시대착오적인 외래어와 맞춤법도 한글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필요 없는 사이시옷을 고집해 ‘외갓집’과 ‘장맛비’를 외우게 하고 바다에 사는 가재 랍스터를 ‘로브스터’로 만들었다. 서울말이 아닌 표준어를 완벽하게 구사해야 할 책무가 있는 방송인들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팬 서비스’를 말할 때 팬의 ‘f’는 윗니를 아랫입술에 걸쳐 영어처럼 발음하면서 서비스의 ‘v’는 가뿐히 생략한다.

한글날도 애꿎게 부침을 겪었다. 1991년 법정 공휴일에서 돌연 제외됐다가 22년 만인 2012년 재지정됐다. 공휴일 부활 10돌을 맞은 한글날을 앞두고 칼럼 제목도 한글로 써야 응당 맞겠으나 진혼곡이 검색어에 오르내릴까 젊은 세대에 친숙한 영어로 달아봤다.


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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