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경제정책에 좀처럼 ‘훈수’를 두지 않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례적으로 영국에 대규모 감세 정책을 재고하라고 촉구했다.
27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IMF는 성명을 통해 “영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조되는 점을 감안하면 목적이 모호한 대규모 재정 패키지를 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IMF는 이어 “재정·통화정책이 어긋나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영국 물가가 40년 만에 최고 수준에 달해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에 나서는 상황에서 영국 정부가 총 450억 파운드(약 70조 원) 규모의 대규모 감세 정책으로 재정을 푸는 것이 역효과만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한 셈이다.
IMF는 “에너지 가격 충격 속에서 가계와 기업을 도우려는 영국 정부의 의도는 이해한다”면서도 “감세는 고소득자에게 불균형적인 이익으로 돌아갈 것이고 불평등을 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 역시 영국의 신용등급을 조정하지 않으면서도 “영국 정부의 재정 전략 신뢰성을 둘러싼 시장의 충격이 지속되면 영국이 적당한 비용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영구적으로 약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영국 중앙은행(BOE)의 휴 필 수석이코노미스트가 급격한 금리 인상을 시사하며 시장을 또 한 번 뒤흔들었다. 그는 “정부의 새 재정정책과 시장의 심각한 반응, 세계 각국의 광범위한 금리 상승은 상당한 통화정책 대응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 후 선물 시장에서는 영국의 기준금리가 현재 2.25%에서 내년 5월 6.25%까지 오를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렸다고 FT는 전했다. 시장에서는 BOE가 11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를 한 번에 1.25%포인트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고강도 긴축 전망과 영국 재정정책에 대한 시장 불신이 맞물리면서 영국 국채금리는 연일 들썩이고 있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1.8%대에 머물던 10년물 국채금리는 이날 전 거래일보다 0.26%포인트 오른 4.5%를 기록해 2008년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30년물 역시 5.0%로 20년 만에 최고를 나타냈다.
금리가 급등하면서 영국 주택시장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이날 오후 HSBC는 “이날 남은 시간 중 신규 주택담보대출 취급을 하지 않는다”고 공지했고 산탄데르, 소형대출업체인 켄싱턴, 어코드모기지 등이 일부 주담대 취급을 중단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전날에는 영국 최대 주담대 취급업체 로이드뱅킹그룹이 일부 주담대 취급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금리가 치솟고 집값이 하락하는 데 대비해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영국 주택 가격이 10~15%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