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공급망 재편, 미중 아닌 한미전쟁…대응책 없을 땐 진정 '외교참사'"

전경련 전문가 간담회…양향자 의원 참석

"IRA 대응전략 세 가지 모두 실효성 낮아"

"한국 내놓을 카드 많지 않아…외교참사"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개최한 ‘반도체·인플레감축법(IRA) 등 美 공급망 재편과 한국의 대응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박경은 기자전국경제인연합회가 2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개최한 ‘반도체·인플레감축법(IRA) 등 美 공급망 재편과 한국의 대응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박경은 기자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 미중 갈등이 아닌 한미 간 전쟁에 가깝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왔다. 정부가 이에 대한 대비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할 땐 진정한 의미의 ‘외교참사’라는 우려도 뒤따랐다.



국회 반도체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양향자 의원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열린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양 의원은 “지금 세계는 과학기술 패권 경쟁 중”이라며 “패배는 곧 신(新) 식민지 전략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학기술이 외교·국방·안보인 시대”라면서 “예컨대 우크라이나에 한국의 삼성 반도체나 대만 TSMC처럼 미국의 산업과 국방을 지속시키는 반도체 공장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미국의 (전쟁) 개입 가능성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이를 반도체 방패라고 부른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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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의원은 미국의 반도체지원법(칩스 포 아메리카 액트)에 대해서는 “당장은 중국을 고립시키지만 궁극적으로는 메모리 1위인 한국을 미국 기업이 따라잡고 시스템반도체 분야 1위인 대만을 미국이 추월하는 게 목표”라면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관련해서는 △국제무역기구(WTO) 제소 △시행령에 한국 입장 반영 △입법 수정 등 세 가지 대응전략을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양 의원은 “이 세 가지 방법 모두 실효성이 낮다”면서 “현재로서는 한국이 내놓을 카드가 많지 않다. 요즘 외교참사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경쟁국과 교섭하면서 아무 카드, 무기가 없는 상태야말로 진정한 참사고 재앙이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양 의원은 “미국이 반도체 생산기지를 국내로 옮기려는 야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며 “우리는 미중 전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한미 전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내년 반도체산업법 예산을 보니 기획재정부에서 통째로 들어내버렸다. ‘대기업에서 알아서 할 건데 정부가 지원하는 게 어떤 도움이 되느냐’는 입장”이라며 “반도체 산업은 그 어떤 산업보다 중요하게 국가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국회 차원의 첨단산업특별위원회 구성 △정부 차원의 과학기술산업 컨트롤타워 설치를 제안하며 “대한민국 기술력이 과연 세계 무대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의 IRA와 비슷한 조치가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계속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경제안보팀장은 “IRA는 11월 중간선거용이었으며 굉장히 정치적인 법안”이라고 평가한 뒤 “2024년 미국 대선이 있기 때문에 내년에도 이런 식의 굉장히 강력한 대중국 조치가 쏟아질 수 있게 한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미협상력을 높여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김동환 국제전략자원연구원장도 IRA에 대해 “중국이 장악한 글로벌 광물 공급망에 대한 미국의 선전포고”라면서 “중요한 점은 미국이 싸울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찍 선전포고를 했고 한국 기업이 파편을 맞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IRA가 과연 중국 대응용인가 의문이 든다”며 “미국의 전기차를 중심으로 배터리 관련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게 가장 큰 목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 위원은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과연 한국에 예외를 두는 게 가능할까 싶은 (의구심이 있다)”고 말했다. IRA 등이 단순히 중국을 겨냥한 법안이 아니고 미국 자국 산업 발전 목적이라면 한국 등 다른 국가의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는 ‘IRA로 잃게 된 현대기아차의 가격경쟁력을 정부가 보조금 지원으로 보전해주면 되지 않느냐’는 업계 관계자 제안도 나왔다. 이에 주제네바 한국대사와 경제통상대사 등을 역임한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국제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보조금”이라며 “한국이 그런 액션을 취하게 되면 미국의 IRA 조치가 WTO 정신 위반이라고 말하는 한국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다”고 일축했다.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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