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역사속 오늘]밸푸어 선언과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정착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

1923년 9월 29일







대대적인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화약고라고 부른다.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리던 발칸반도나, 올해 러시아 침공으로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대표적이다. 타이완과 우리나라가 있는 동아시아 지역도 세계가 주목하는 곳이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 지역도 폭발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분쟁의 연속이었다. 유대 민족의 가나안 정복에서 시작된 전쟁은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의 이스라엘 정복으로 이어졌다. 기원후 70년 로마제국의 장군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파괴한 후 유대인은 온 세계로 흩어졌다. 이산의 시대에도 유대인은 옛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의 분투는 시오니즘의 탄생을 낳았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작은 언덕에 불과한 시온산은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호소력을 지녔다. ‘시온으로 돌아가자’는 염원은 알리야(Aliyah) 운동으로 나타났다. 오스만제국이 지배하던 시절 두 차례에 걸쳐 7만 여명이 귀환했고, 1919년 영국의 신탁통치 이후에는 37만 명이 세 차례 이주의 물결에 참여했다. 이 운동을 촉진한 것이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이다. 일차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11월 영국의 외무장관 밸푸어가 영국 유대인 사회의 지도자인 로스차일드 경에게 편지를 보냈다. 유대인이 참전하면 ‘유대 민족의 보금자리’ 건설을 지지하겠다는 내용이 곧 공식 발표됐다. 유대인들에게 천우신조였던 선언은 팔레스타인 지역 주민들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구약성서 시대의 종족전쟁이 재연될 소지가 컸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의견이 갈렸지만, 국제연맹은 논의 끝에 밸푸어 선언 실행을 승인했다. 그 결과 1923년 9월 29일을 기해 유대민족의 정착지 건설이 공식화되었다. 이 날은 1948년 이스라엘 공화국 탄생으로 귀결될 정치군사적 활동의 시작이다. 동시에 이날은 이후 한 세기 동안 이어질 중동 분쟁의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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