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무역수지가 또다시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4월부터 6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인데, 외환위기 직전이던 1997년 5월 이후 25년만에 처음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에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며 수입액이 크게 늘었습니다. 올해 9월까지 무역적자 누계 역시 연간 기준 최대 규모를 경신했습니다.
2일 산업통상자원부의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9월 수출은 1년 전보다 2.8% 늘어난 574억6000만달러를, 수입은 18.6% 늘어난 612억3000만달러를 기록해 무역수지는 37억7000만달러 적자로 나타났습니다. 6개월 연속 마이너스는 1997년 1~5월 이후 25년 만입니다. 다만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지난 8월(94억9000만 달러)과 비교해 크게(60.3%) 축소됐습니다.
지난 달 수출은 역대 9월 최대 수출 실적을 경신했습니다. 2020년 11월 이후 23개월 연속 증가세입니다. 하지만 수입 증가 폭이 훨씬 더 크다 보니 적자를 피할 수 없었었습니다. 지난달 수입은 1년새 18.6%나 증가한 612억3000만 달러로 집계됐습니다.
에너지 수입액이 크게 늘어난 게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지난달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원 수입액은 지난해 9월(99억 달러)보다 81.2%나 늘어난 180억 달러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공급 불안이 심화하면서 에너지 가격의 고공비행이 이어진 여파입니다. 에너지원을 수입하는 화폐인 달러가 ‘킹달러’ 현상으로 초강세를 이어간 것 역시 에너지수입액의 급증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에 연간 누적 무역수지 적자는 288억7600만달러로 1996년 연간 최대 적자기록 (206억 달러)을 훌쩍 넘겨, 300억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게 됐습니다.
게다가 한국경제를 떠받드는 반도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은 114억89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5.7% 줄어들었습니다. 지난 8월 26개월 만에 처음으로 역성장(-7.8%)을 기록한 이후 두 달째 부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산업부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구매력 저하로 스마트폰 등 소비자용 IT 제품의 수요가 둔화하고, D램 가격 하락세와 낸드 공급 과잉 등의 영향”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반도체가 안 팔리다 보니, 반도체 재고는 쌓이고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입니다. 통계청의 8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반도체 재고는 전월보다 3.8% 늘었는데,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67.3%나 증가했습니다.
다음 달에도 반도체 업황이 호전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최근 산업연구원이 내놓은 ‘산업경기 전문가 서베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도체 업종의 10월 업항 ‘전문가 서베이지수’는 26에 불과했습니다. 이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지수(0~200)가 0에 가까울수록 전월 대비 감소(악화) 의견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나마 네 달 연속 적자를 이어가던 대중 무역수지는 지난달 흑자로 전환됐습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대중국 수출액이 1년 전보다 6.5%나 줄었기 때입니다. 정부는 당분간 지금과 같은 무역적자와 수출둔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대중 무역수지가 5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되고 9월 무역적자 규모가 전달보다 50억 달러 이상 감소한 것은 의미있는 변화”라고 평가하면서도 “다만 글로벌 경기 둔화와 반도체 가격하락 등을 감안할 때 당분간 높은 수출증가율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무역적자 확대는 원화 가치 약세로 이어져 이미 초강세인 달러 가치를 더욱 밀어올릴 수 있습니다. ‘킹달러’가 더 강해진다는 의미입니다. 높은 환율로 원가가 상승해 무역수지 적자 폭이 확대되고, 이는 또다시 환율 상승 압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달러화 초강세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같은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한국이 25년 만에 6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낸 가운데 호주 맥쿼리캐피털 관계자는 무역수지 적자를 들어 한국 원화를 아시아에서 가장 취약한 통화 중 하나로 꼽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한국은 1996년 역대 최대 규모의 무역적자를 내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외환위기의 악몽에 빠졌습니다. 무역수지 적자, 언제까지 이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