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국정감사 첫날부터 곳곳에서 충돌하며 파행을 빚었다. 주요 상임위원회에서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한 감사원의 문재인 전 대통령 서면 조사 요구,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 관련 논란,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안 가결 등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전·현직 대통령의 실정을 두고 정치적 공방만 오가면서 정책 국감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 국회에 따르면 외교통일위원회 국감은 두 차례나 정회됐다. 여야가 박 장관의 퇴장 문제를 놓고 평행선을 이어간 결과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박 장관 해임 건의안이 통과된 것을 언급하며 박 장관의 국감장 퇴장과 장관직 사퇴를 재차 요구했다. 이에 국민의힘이 억지 정치 공세라고 맞서면서 회의는 개의 약 30분 만에 정회됐다.
오후에는 윤 대통령의 미국 뉴욕 발언 관련 영상이 문제가 됐다. 야당 측에서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음성’으로 포함된 영상을 틀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여당 측에서는 사전에 확인된 발언만 가능하다며 맞섰다.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지금까지 질의할 때 파워포인트(PPT)든 영상이든 다 틀면서 했다”고 말했고 같은 당의 이상민 의원 역시 “상임위에서 영상을 틀어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여당 간사인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은 “본회의장에서도 의원 발언이 아닌 제3자의 음성은 반드시 위원장이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며 반박했다. 양측의 의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자 외통위는 속개된 지 40여 분 만에 정회가 선언됐다.
여야는 감사원의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 조사 통보를 놓고도 거친 설전을 벌였다. 법사위 국감은 문 전 대통령 조사에 반발한 민주당의 피켓 시위와 국민의힘의 맞불 피켓 시위로 53분여 ‘지각 개의’했다.
회의 시작에 앞서 민주당 의원들은 법사위 회의장 앞자리에 놓인 노트북 뒤편에 ‘정치 탄압 중단하라’가 적힌 피켓을 붙였다. 이를 뒤늦게 확인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정쟁 국감 NO 민생 국감 YES’라고 쓰인 피켓을 선보이면서 신경전을 펼쳤다. 간사 간 협의를 통해 국감은 재개됐지만 본격 질의를 하기도 전에 ‘릴레이 의사 진행 발언’으로 여야는 기싸움을 이어갔다.
야당 간사인 기동민 의원은 “최근 상황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몰아치는 듯하다. 특히 사정 기관을 내세워 국면을 전환하려는 정치적 노림수가 보이는 것 같다”며 “감사원의 명백한 최종 목표는 정치적 수사를 덧붙일 필요도 없이 문 전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감사원의 문 전 대통령 조사를 비판하는 야당 의원들의 발언이 이어지자 국민의힘 소속인 김도읍 위원장은 “감사와 수사에 성역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알겠다”고 맞받아쳤다.
국민의힘은 서면 조사를 거부한 문 전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여당 간사인 정점식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이 2016년 탄핵 국면 때 한 발언을 소개한 뒤 “이 시점에 다시 문 전 대통령께 (발언을) 돌려드리겠다. 감사원도 전직 대통령이라고 예우할 것이 아니라 그냥 피조사자로 다루면 된다. 즉각적인 강제 조사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의 조수진 의원도 문 전 대통령이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고 언급한 사실을 거론하며 “무례한 짓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흔치 않은 용어일 것이다. 아직도 왕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고 비꼬았다. 여야의 의사 진행 발언이 쏟아지면서 오전 국감에서 본격적인 질의는 개의 후 1시간 만에 시작됐다.
주요 상임위에서는 정책 질의보다는 정치적 공방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 수차례 반복됐다.
교육위원회의 교육부 국감에서는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한 증인 채택 문제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여당은 야당이 증인 채택을 단독으로 강행한 데 대해 ‘날치기’라고 비판했고 민주당은 증인으로 채택된 국민대·숙명여대 총장이 해외 출국을 이유로 불출석한 것을 놓고 국감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앞서 임홍재 국민대 총장, 장윤금 숙명여대 총장은 지난달 23일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행사 참석 등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행정안전위원회 국감에서는 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정부를 가리켜 ‘거짓말로 일관한다’고 비판한 것을 두고 여야 간 고성이 오갔다. 의원들끼리 맞서다가 “버르장머리가 없다” “어디 감히” 같은 말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