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고교생의 카툰 만화 작품을 둘러싸고 문체부와 여야의 날선 공방이 벌어졌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등은 새로운 블랙리스트 사태가 우려된다며 공세를 가했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전 정부 때는 더했다’며 역공을 시도했다. 문체부는 ‘행사 주최측이 문제’라먀 파장 줄이기에 애쓰는 모습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달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진행된 부천국제만화축제에 전시된 ‘윤석열차’라는 제목의 윤 대통령을 풍자 만화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지난 7∼8월 진행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의 카툰 부문 금상(경기도지사상) 수상작이다. SNS에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후 문체부가 전날 두 차례의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혀 표현의 자유를 침해 논란이 일었다. 특히 문체부의 초강경 대응은 하필이면 국감을 하루 앞둔 날 이뤄져 국감장에서의 공방을 예고했다.
이날 국감에서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야당 의원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문체부가 개별 작품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며 “다만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주최 측의) 작품심사 선정기준에서 당초 우리에게 제시한 약속과 달리, 정치적 색채를 빼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 조항을 무시하고 공모전을 진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공모전이 ‘정치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예산지원과 문체부 이름 사용을 허가했는데 이것이 부정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문체부는 ‘표현의 자유’ 논란이 아니라 만화 공모전에서의 행정상의 절차를 문제 삼는다는 것이다. 박 장관의 지적은 만화영상진흥원에 집중됐다.
반면 야당은 ‘표현의 자유’ 침해 부분에 화력을 집중했다.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윤덕 의원은 이날 질의에 앞서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웹툰 강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 작품을 두고 문체부가 긴급하게 두 차례 협박성 보도자료를 낸다는 작금의 현실이 어처구니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가 다시 떠오른다. 그때는 밀실에서 이뤄졌지만, 이번에는 아예 공개적으로 예술인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은 예술인들에게 경고한 문체부를 더 엄중하게 경고한다.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중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같은 당 이병훈 의원은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쿠팡플레이의 ‘SNL 코리아’에 출연해 정치풍자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SNL의 권리”라고 답변한 영상을 재생한 뒤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도 문제가 되고, 대통령의 뜻과도 반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지난 2013년 국립극단의 연극 ‘개구리’ 검열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의 도화선이 된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 “그 몸통이 어떻게 된 지 아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은 불쾌한 표정으로 “이것(‘윤석열차’)와 그것과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같은 당 전재수 의원은 만화를 화면에 띄운 채 ‘어느 부분이 정치적이라는 건가’며 박 장관을 다그치기도 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도 “학생의 상상력으로 그린 풍자화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라며 “문체부 공무원들의 직권남용이자 심사위원 겁박”이라고 주장했다. 임종성 의원은 “앞서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으로) MBC를 제물 삼아 언론의 자유를 옥죄고 있었다”며 “언론 탄압에 이어 문화 탄압이 시작됐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이날 의원석에 ‘비속어 논란’을 풍자하는 “일 잘하는 이XX”라고 적힌 피켓을 세웠다가 홍익표 문체위원장으로부터 여야 간사의 의견이라며 제재를 받자 “이것도 혹시 어제부터 뜨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차별, 뭐 그런 것이냐”고 언급했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문체부의 주장을 옹호하면서 전 정권의 사례를 들어 역공에 나섰다.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은 “지난 정부는 과연 이런 일이 있을 때 어떻게 조치했는지 사례를 찾아봤다”며 “2019년 3월 외신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고 보도하자 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기자의 이름과 개인 이력을 공개하고 비판이 거세지자 삭제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소득주도성장을 비판하는 대자보에 정부는 대통령 명예훼손으로 내사를 진행했고,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을 한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는 민형사상 소송까지 갔다”며 “과거부터 표현의 자유 위축 논란을 일으킨 건 문재인 정권이 시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지난 정부에서 얼굴을 문재인 열차로 바꾸고 차장을 김정숙 여사로, 탑승자를 586 운동권과 시민단체, 김정은으로 했다면 제재는 물론이고 고등학생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하고 온라인상 집단 린치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같은 당 황보승희 의원은 “신종철 만화영상진흥원장은 민주당 소속 경기도의원을 지내고 20대 총선 예비후보까지 했던 민주당에 가까운 인사로, 만화 경력이 전무한데도 임명됐다”며 “문화 관련 기관장에 정치적 편향성의 의혹을 살 수 있는 인물이 가는 것을 되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하며 더불어민주당과의 연관성을 주장한 데 대해 민주당 유정주 의원은 “근거도 없이 부천 지역과 기관들을 폄하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긴장감을 연출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의원은 “이는 윤석열 정부의 예술활동 정책과도 근본적으로 배치된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고 줄곧 밝혀왔는데 이번 문체부의 조치야말로 과도한 간섭”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문체부의 이번 조치는 향후 윤 정부 내내 문화예술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즉 저렇게 그리면 안된다는 것을 사실상 공표한 것으로, 앞으로 문화예술활동이 이 사건으로 상당히 위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홍익표 문체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그냥 일반 만화라면 모를까 카툰의 정의는 ‘주로 정치적인 내용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한 컷짜리 만화’”라며 “그냥 끝날 일을 문체부가 키웠다. 향후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도움이 안될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