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A 씨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2차 피해를 경험했다. A 씨는 신고 즉시 빠른 수사를 기대했지만 경찰의 휴가·교육·연휴 등의 이유로 수사관 배정이 며칠간 지연됐다. 수사가 미뤄지는 동안 불법 촬영 영상은 계속 유포됐다. A 씨는 기다리는 하루하루 초조함에 떨었다.
A 씨는 수사 과정에서도 경찰을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수사관이 계속 바뀌면서 조사의 연속성이 없었고 피해자인 자신을 가해자 취조하듯 대했다. 여성 수사관을 배정받고 싶었지만 “여성 수사관 배정은 시간이 걸린다. 남성 수사관에게 받아도 괜찮겠냐”는 말을 들어 어쩔 수 없었다. 영상 삭제를 부탁하니 수사관은 “아무래도 본인만큼 열심히 할 수는 없다. 삭제 요청을 본인이 하라”는 말을 했다. A 씨는 “믿고 의지할 사람은 수사관밖에 없는데 수사 과정 내내 불안했다”고 호소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활동을 하는 ‘프로젝트 리셋’ 관계자는 5일 “경찰에 제출한 채증 자료를 상담실이나 다른 장소가 아닌 공개된 장소에서 서로 돌려 보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로 흥미를 보이며 “줘봐” “뭔데” 이런 말도 편히 오갔다”며 “피해자가 아니라 그랬는지 모르지만 부적절한 태도”라고 밝혔다.
디지털 성범죄 수사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만연하고 있다. 여경 수사관 배정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거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경찰관이 배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찰의 과다한 업무 특성상 개별 사건에 열과 성을 다할 수 없는 등 현실적·제도적 한계도 크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서 여경 비율은 29%다. 지자체별로는 서울 26%, 경기남부 25%, 부산 25% 등이다. 여경 비율이 가장 높은 경북은 44%, 가장 낮은 대전은 23%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 전체 평균 여경 비율이 10% 초반인 데 비하면 여경 비율이 높은 편”이라며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조사 과정에서 여성 경찰관이 조사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사이버수사팀 여경 비율은 전체 조직 평균보다 높다. 그럼에도 피해자 중심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프로젝트 리셋 관계자는 “일부 수사관들이 섣불리 범죄의 경중을 따지거나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며 “피해자 중심으로 상황을 판단하지 않고 본인 혹은 가해자를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사 과정상의 문제를 무조건 경찰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리셋은 “부족한 인력과 예산에 비해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너무 많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경찰 개개인을 질책할 것이 아니라 수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직과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 디지털 성범죄 담당 수사관은 6월 기준 109명이다. ‘n번방’ 사건 이후 3년간 증원된 인원은 10명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