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40)씨는 지난해 말 건강검진에서 당뇨 전 단계라는 진단을 받았다. 혈당 수치가 일반인 보다 높고 더 올라가면 당뇨로 넘어간다며 의사는 운동과 식단관리를 꼭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운동은 짬을 내서 하면 되지만 문제는 식단이었다. 평소 요리에 별 관심이 없는데다 회사를 다니면서 당뇨 관리 레시피에 맞춰 음식을 만드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러던 중 A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일부 기업들이 당뇨 환자 맞춤형 음식을 정기적으로 집에 배송해 주는 서비스를 한다는 것을 보게 됐다. A씨는 즉시 구독을 신청해 매주 3일 아침, 저녁은 당뇨 식단으로 식이조절을 통해 혈당을 관리하고 있다.
당뇨 위험 2000만 시대, 당뇨식단 구독자 ‘쑥쑥’
국내 당뇨병 위험 인구가 2000만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식단 관리 필요성이 커진 가운데 식품 기업들이 출시한 당뇨식단 구독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집에서 직접 요리할 필요가 없고, 기업이 당뇨 관리 레시피는 물론 맛도 고려해 음식을 만든 뒤 집 앞까지 정기 배송을 해줘 최근 들어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14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현대그린푸드가 3월 론칭한 ‘그리팅 당뇨식단’의 구독자 수는 매월 평균 15%씩 늘고 있다. 4월 전월 대비 7.4% 늘어난 것을 시작으로 7월 12.9%, 8월 15.1% 증가했으며 지난달에는 24.3% 늘었다. 그리팅 당뇨식단은 1끼당 5개의 반찬으로 구성되며 1주일(6끼) 또는 2주일(12끼) 단위로 기간을 선택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풀무원이 선보인 ‘디자인밀 당뇨케어 밀 플랜’ 구독자 수도 꾸준히 증가 추세다. 올 들어 매월 평균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당뇨 식단은 2020년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식품별 기준 및 규격’ 고시 개정안에서 ‘식단형 식사관리식품’ 항목을 신설하면서 출시되기 시작했다. 식약처가 고시한 제조 기준에 따라 ‘당류 10% 미만, 단백질 18g이상, 나트륨 1350mg이하’ 기준을 지키면 ‘당뇨 환자식’으로 표기하고 마케팅을 할 수 있다. 현재까지 풀무원, 현대그린푸드 및 일부 스타트업이 제품을 선보였다.
골라먹는 재미…메뉴도 다양, 맛도 신경써
식품기업들이 출시한 당뇨식단의 특징은 당 관리에 신경 쓰면서 맛도 놓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메뉴도 매번 바뀐다. 예를 들어 현대그린푸드 ‘그리팅몰’에서 당뇨식단을 선택하고 주문하기 버튼을 누르면 36종의 식단 중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다. 식단관리 기간은 1주(6끼) 혹은 2주(12끼) 단위로 선택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식단 관리 기간을 1주로 선택하고 배송 받는 날을 월·수·금으로 선택하는 경우 월요일에는 ‘대파 듬뿍 두부조림 세트&연자육 소불고기’와 ‘구운 레몬치킨 세트&당귀 제육볶음’을, 수요일에는 ‘오리 향채소 불고기 세트&매운 주꾸미볶음’과 ‘매콤 꾸지뽕살볶음 세트&당귀 프리타타’를, 금요일에는 ‘강황 닭갈비 세트&연근 메추리알조림’과 ‘마제덮밥 소스 세트&치킨 가라아게’를 배송받는 식이다.
현대그린푸드 관계자는 “당 관리에 탁월하고 구독 기간 동안 매번 다른 반찬을 제공해 당뇨환자 커뮤니티에서도 인기가 높다”며 “신규 고객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으며 재구매율이 54%로 높은 점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린푸드는 당뇨 식단을 현 36개에서 연말까지 48개로 늘릴 계획이다. 풀무원 측도 “다년간 임상 연구 데이터를 토대로 개발한 ‘당 흡수 예측 모델’을 고려해 식단을 설계해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낮아지는 당뇨 발병 연령대 …케어 제품도 인기
당뇨식단에 대한 관심이 느는 것은 당뇨 환자나 위험에 노출된 인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당뇨병학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30세 이상 당뇨병 환자는 605만명 이며, 당뇨병 전 단계인 1583만명을 합하면 당뇨병을 앓고 있거나 앓게 될 인구는 2000만명 이상이다. 30세 이상 인구 7명 중 1명이, 65세 이상에서는 10명 중 3명이 당뇨병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당뇨는 과거 중·장년층에서 주로 발병하는 질환이었지만 서구화된 식생활 등으로 인해 최근에는 발병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무엇보다 당뇨병은 병 자체보다 합병증이 더 무서운 질환으로 꼽힌다. 염증 질환에 취약해지고 저림과 통증이 나타나는 신경병증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 투석이 필요한 수준으로 신장기능이 약화되거나, 3대 실명질환으로 꼽히는 망막병증도 유발될 수 있다.
당뇨 합병증을 예방하려면 꾸준한 운동과 식사 조절을 통한 적정 체중 유지 및 혈당 관리가 필수다. 업계 관계자는 “당뇨는 약을 통한 치료보다는 식이 조절을 통한 혈당 관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당뇨 식단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식단형 제품 외 일반 당뇨케어 제품도 인기다. 이들 제품은 엄격한 당 섭취 제한이 필요한 소비자를 위해 설탕 대신 대체 감미료를 사용하고 비타민, 식이섬유 등 각종 영양소를 균형있게 포함한 것이 특징이다. hy가 지난해 1월 선보인 ‘잇츠온 케어온 당케어’ 의 올 1~9월 판매량은 약 193만개로 전년 같은 기간(155만개) 보다 24% 증가했다. 대상웰라이프의 환자용 식품 브랜드 ‘뉴케어’는 ‘당플랜’ 제품군 매출액이 꾸준히 증가하자 곡물음료, 영양바 간식 등으로 라인업을 확대 중이다. 일동후디스는 당뇨케어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이자 최근 ‘하이뮨 케어메이트 균형당뇨식’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