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출근시간에 지각하지 않으려 혼잡한 지하철을 타고, 정원초과 직전의 엘리베이터에 억지로 타려고 몸을 구겨 넣는다. 수평적 네트워크를 지향한다며 회사에서 모두 영어 이름을 만들었지만 상사에게는 자연스럽게 이름 뒤에 ‘님’을 붙인다. 결혼을 앞두고 연락을 하지 않은 지 3년이 넘은 입사동기에게 청첩장을 건넬지 고민하고, 사무실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부지불식 내는 짜증과 한숨 소리에 가슴이 철렁한다. 모두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 번 쯤은 경험해봤을 법한 일이다. 서울시극단의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은 이런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직장인들의 삶 속 단편적으로 지나갈 에피소드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모아낸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판교테크노밸리를 무대로 20·30대 직장인들의 애환을 다룬 장류진의 동명 단편소설집을 각색한 연극이다. 작년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80%, 관람객 평점 평균 9.5를 받으며 인기를 끈 데 힘입어 1년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원작 단편소설집 속 여러 작품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서 각색해 전개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표제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 외에도 ‘잘 살겠습니다’ ‘새벽의 방문자들’ ‘탐페레 공항’ ‘다소 낮음’ 등 소설집 속 단편들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쉼없이 교차한다. 하나의 중심 줄거리에 힘을 싣기보다 개별적 장면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관객들의 공감을 유도하며, 배우들의 연기도 실생활처럼 자연스럽다. 작품 속 에피소드들이 모두 주변에서 벌어질법한 이야기라는 점을 환기하기 위해 배우들이 극 중간 관객석 복도를 통해 등장하는 연출도 선보였다. 박선희 연출가는 “원작은 각 에피소드가 독립돼 있는데 각색을 거쳐 등장인물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해석도 더 밝아졌다”며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고 했을 때 기쁨이 어디 있겠냐고 그러시는데, 원작자의 글에도 희망이 보이지만 좀 더 밝게 만들어 봤다”고 말했다.
작년 초연 때 참여한 배우 외에도 다양한 캐스팅이 새롭게 합류했다.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보컬·베이스 윤덕원도 무명 뮤지션 장우 역할로 첫 연극무대에 도전했다. 그는 “잘 아는 소설을 각색한 것이기도 해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참여했다”며 “무대에서 다른 배우들의 연기에 압도되기도 하지만 에너지를 얻으며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원작을 각색한 김한솔 작가는 극중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르는 장우 역할이 “점처럼 서로 떨어져 있는 다양한 직장인들을 하나의 선처럼 연결해주는 역”이라고 소개했다. 30일까지 세종M씨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