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블랙아웃과 같은 사고를 예방하자며 2년 전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이 상임위원회까지 통과했으나 플랫폼 업계의 반발에 결국 무산된 사실이 뒤늦게 주목 받고 있다. 이 법은 데이터센터 사업자들도 기간통신사업자들처럼 화재 등 재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응 체계 등을 의무적으로 수립하도록 하는 안이다. 당시에는 업계 반발로 좌초됐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의회와 정부는 부가통신사업자들의 높아진 영향력에 걸맞은 서비스 안정성과 재난 대응 책임성을 요구하는 만큼 조만간 제도 개선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17일 국회 등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국회에서 방송발전 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법안에는 데이터센터 운영 사업자들도 기간통신사업자, 지상파방송사업자 등과 함께 주요방송통신사업자에 편입하는 안이 포함됐다. 이렇게 되면 동법에 따라 데이터센터 운영사업자들 역시 재난기본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재난기본관리계획은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은 어떻게 되는지, 사고가 났을 때 사업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체계에 따라 움직일 지를 정해 놓은 것이다. 이 법이 시행돼 데이터센터 사업자들도 재난기본관리계획을 세워야 할 대상이었다면 이번 카카오톡 블랙아웃 사태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법은 당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결을 거쳐 본회의 통과까지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예상 밖으로 이후 절차인 법제사법위원회 단계에서 제동이 걸렸다. 부가통신사업자인 업계 특히 네이버가 강하게 반대 의견을 표시한 것이다. 당시 업계는 ‘신고사업자인 부가통신사업자에게 과도한 조치다’ ‘이제 막 커가는 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등 주장을 내세웠다. 본회의 문턱 앞에서 입법이 꺾이자 당시 국회의원 회관 내 과방위 전문위원의 사무실 앞에는 ‘네이버 관계자 출입 금지’ 피켓이 걸리기도 했다.
이중 규제를 둘러싼 쟁점은 앞서 과방위 전체회의에서도 불거졌지만, 결국 표결을 거쳐 전체 회의에서 의결하는 방향으로 뜻이 모였다. 당시 이 법에 반대 의견을 보인 위원 측은 이 법의 제정으로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 이중 규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피력했다. 이미 정보통신망법 46조에 비슷한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새 법 신설로 이중 규제가 될 수 있으며 데이터 센터 산업을 지나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일각에서 해당 조항은 사고를 예방하는 사전적 측면이 강조돼 사고 이후 대처를 규정하는 새 법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석영 과기부 2차관은 당시 “방송통신 시설이나 주요 기반시설에서 실제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되고 어떻게 처리해야 되고 이런 부분들이 사실은 기반시설 보호법에는 없다”며 “그래서 (데이터센터를) 재난관리기본계획의 방송통신시설로 봐서 재난관리기본계획 대상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고 반박했다. 당시 법 추진에 참여했던 과방위 수석전문위원도 “정보통신망법에 있는 조항은 기업 중심의 사전 규제에 가깝지만 신설하려 했던 조항은 사후에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에 이를 대비하자는 취지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 화재 사고를 보면 예방 조치 부문에서는 아직까지 별다른 허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사고가 난 데이터센터는 지난 2019년 사용 승인을 받은 이후 소방시설법 25조에 따라 연 2회 업체를 선정해 자체 점검을 하게 돼있다. 지금까지 6번 점검 진행 동안 지적 사항이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지난 2019년 소방에서 진행한 합동 점검도 마찬가지로 지적 사항 없이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