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같은 50bp 인상인데 10월 빅스텝이 7월 빅스텝과 달랐던 4가지 이유 [조지원의 BOK리포트]

소수의견 등장에 신중한 포워드 가이던스 배경

①美 긴축 강화 기대에 환율 1440원 돌파

②금리 인상 등에 국내 경기 둔화 우려 고조

③같은 고물가지만 7월엔 선제적 대응 강조

④"매 고기 진짜 못 먹는다"던 비둘기파 등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은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은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행보가 1년 2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역사에 남을 이번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에서 하이라이트는 아마도 7월 13일과 10월 12일에 단행된 두 번의 빅스텝(금리 0.50%포인트 인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한국에서의 50bp(1bp는 0.01%포인트) 인상은 미국의 75bp 인상에 버금가는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며 빅스텝으로 강도 높은 긴축 행보를 이어가고 있음을 강조했다.



두 번의 빅스텝은 불과 3개월 시차를 두고 이뤄졌지만 인상 과정이나 시장 반응은 전혀 다르다. 3개월 사이 국내 경기가 급격히 악화되고 기준금리가 중립금리 상단까지 오르면서 속도 조절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금융통화위원회 만장일치로 이뤄졌던 7월 빅스텝과 달리 이번 빅스텝은 금통위원 가운데 2명이나 소수의견을 냈다. 금통위 직후 나온 이 총재의 포워드 가이던스(사전적 정책방향 제시)도 몇 달 전보다 훨씬 조심스러워졌다. 시장에서는 11월 금통위에서 금리가 25bp 오를지 50bp 오를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한국의 통화정책을 주제로 대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한국의 통화정책을 주제로 대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①이창용 “고환율로 인한 자본유출 고려할 수밖에”

3개월 동안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 의장의 잭슨홀 경제심포지엄 연설과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FOMC)의 최종금리 발표 이후 긴축 기조 강화 기대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특히 미 달러화가 무섭도록 강세를 보이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7월 금통위 당시 원·달러 환율은 1300원 안팎이었는데 10월 금통위 전엔 1410~1440원 사이에서 높은 변동성을 보였다. 고환율이 수입물가를 밀어 올리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외화 유출 등 금융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그동안 통화정책에서 환율 변동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던 한은의 입장도 크게 달라졌다. 이 총재는 12일 빅스텝 결정 직후 “환율 때문만은 아니지만 환율의 급격한 절하가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시인했다. 이 총재는 15일 미국 워싱턴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강연에서도 “말할 필요도 없이 한은은 특정 수준의 환율을 방어하려 하지는 않지만 급격한 환율 변동이 금융 안정에 가져올 수 있는 자본유출 압력 증대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홍경식 통화정책국장도 17일 블로그를 통해 “(10월 기준금리 결정에서) 환율 상승으로 외환 부문의 리스크가 증대된 점도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홍 국장은 “통화가치 약세 전망은 외국인 투자자가 자금을 회수하거나 만기도래분 재투자를 지연시키는 유인으로 작용한다”라며 “환율의 급격한 상승이 직간접 경로를 통해 국내 금융기관의 유동성 사정에 미치는 파급효과에도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을 목표로 하는 한은이 고환율(로 인한 고물가)을 우려해 강도 높은 금리 인상을 단행한 셈이다.

17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 연합뉴스17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 연합뉴스


②경제 펀더멘탈 악화에 경기 둔화 우려 고조

그러면서 경기 둔화 우려는 훨씬 더 커졌다. 물가 이외에도 신경을 써야 할 변수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김웅 조사국장이 17일 작성한 블로그에 따르면 8월 경제 전망 이후 글로벌 경기가 빠르게 둔화되고 있다. 미 연준의 긴축에 러시아의 대(對)유럽 가스공급 축소, 중국의 부동산 경기 부진과 도시 봉쇄 등으로 내수·수출 모두 둔화됐다는 것이다. 김 국장은 “세계 3대 경제권인 미국, 유럽, 중국의 경기가 동반 위축되면서 글로벌 경기 하방 리크스가 커졌다”고 진단했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한은이 추진해온 금리 인상 영향이 서서히 반영되고 있다. 한은은 금리 상승이 부동산 가격 하락과 이자 수지 악화 등으로 민간소비 회복세를 둔화시키는 가운데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 증가로 설비·건설 투자도 지연되거나 제약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이번 빅스텝만으로 성장률이 0.1%포인트 더 낮아질 수 있다. 결국 한은 조사국은 8월 경제 전망에서 내년 성장률을 2.4%에서 2.1%로 낮춘 데 이어 이달 금통위에선 이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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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우리 경제 펀더멘탈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올해 누적 무역수지 적자는 327억 1400만 달러로 연간 기준 최대 적자인 1996년(206억 2400만 달러)보다 크다. 2008년(-132억 6700만 달러) 이후 처음으로 연간 적자를 낼 것이란 관측마저 나온다. 결국 8월 경상수지는 30억 5000만 달러 적자를 냈다. 배당금을 지급하는 4월이 아닌 달에 경상수지가 적자를 낸 것은 2012년 2월 이후 한 번도 없었다. 9월 말 외환보유액은 4167억 7000만 달러로 한 달 만에 196억 6000만 달러 줄면서 2008년 11월 이후 가장 크게 줄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로 인상한 12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대출 관련 현수막이 붙어있다. 연합뉴스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로 인상한 12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대출 관련 현수막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③고물가 상황은 같지만 7월보단 급박함 덜해

7월과 10월 빅스텝 모두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같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물가 상황은 조금 달랐다. 7월 금통위 당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월 4.8%, 5월 5.4%, 6월 6.0% 등으로 빠르게 상승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6%대를 돌파한 상태였다. 당시 한은은 물가·임금 간 상호작용으로 고물가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며 선제적 대응을 위해 처음으로 빅스텝을 밟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금통위 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월 6.3%, 8월 5.7%, 9월 5.6% 등으로 조금씩 떨어지는 중이다. 한은은 환율 상승 등으로 소비자물가가 상당 기간 5~6%대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했다. 물가안정목표인 2%를 훨씬 넘는 물가가 계속된다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은 측 설명이다. 다만 이러한 전망이 나온 것은 8월도 마찬가지였으나 당시엔 25bp 인상에 그쳤다. 특히 이번 통화정책방향 결정문과 총재 간담회에서는 고물가 고착화 방지나 물가·임금 상호작용 우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물가만 본다면 7월 빅스텝과 같은 급박함은 덜한 셈이다.

신성환 금융통화위원. 사진제공=한은신성환 금융통화위원. 사진제공=한은


④중립금리보다 높일지 이견…비둘기파의 등장도 변수

기준금리 수준 자체도 달라졌다. 7월 빅스텝 당시엔 기준금리가 1.75%에서 2.25%로 올랐는데 10월 빅스텝으로는 기준금리가 2.50%에서 3.00%까지 올랐다. 기준금리가 3%대로 올라선 것은 2012년 10월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이 총재는 7월 50bp 인상으로 중립금리 하단에 진입했고 8월 25bp 인상에 중립금리 중간 정도로 왔다고 평가했다. 중립금리는 경제를 과열시키지도 위축시키지도 않는 균형금리를 말하는데 추정 방식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통상 범위로 추정한다. 10월 50bp 인상으로 중립금리 상단에 들어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앞으로의 금리 인상은 경기 위축으로 직결될 수 있다.

기준금리를 중립금리보다 더 높게 올려 경기를 꺾으면서까지 물가를 잡아야 하는 지를 두고서는 금통위 내부에서 이견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 총재는 12일 간담회에서 “5%대 이상 높은 물가 상승률이 지속된다면 과연 중립금리 수준으로 물가를 잡을 수 있을지, 아니면 더 높은 수준으로 가야 할 지에 대해 금통위원 간 굉장히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7월 금통위 직후 신성환 금통위원이 금통위에 합류하면서 구성도 다소 바뀌었다. 신 위원은 취임 당일 통화정책 성향을 묻자 “비둘기 고기는 못 먹고, 매 고기는 진짜 못 먹는다”라며 농담으로 대응했으나 이번 금통위에서 25bp 인상 소수의견을 내면서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확인됐다. 그동안 금통위 내 유일한 비둘기파로 꼽혔던 주상영 금통위원과 함께 세를 불린 만큼 향후 금통위 내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


조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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