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나고 보니 주택 공급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열린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대책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부동산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던 2017년부터 불거졌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 폭등을 투기 탓으로 여겨 규제 위주의 대책으로 일관했다. 진짜 원인은 공급 부족에 있었다. 서울의 경우 멸실 주택이 한 해 2만 가구가 넘는 반면 신규 주택 공급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임기 내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공급을 제때 했더라면 수요와 균형을 이뤄 국민이 감당 가능한 지점에서 가격이 형성됐을 것이다. 정부가 시장 원리를 무시하자 집값은 올라갔고 이에 놀란 가수요가 붙어 나중에는 공급 대책을 내놓아도 소용이 없는 지경이 됐다.
비슷한 일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집에 갇혀 지내던 소비자들이 그동안 억눌린 소비를 터뜨린 측면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 번도 회수하지 못한 과잉 유동성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공급이 줄어든 데 있었다. 코로나19로 이동이 막히자 세계의 수많은 원자재 광산에서 일할 사람이 없어 생산이 감소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공급이 급감했고 이상기후로 주요 곡물의 작황이 나빠졌다. 공급 부족으로 생긴 물가 문제는 공급으로 풀어야 한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수요를 억누르는 쪽을 선택했다. 그는 사상 초유의 세 번 연속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아 가만히 있는 수요에 꼼짝 말라며 엄포를 놓았다. 수요를 잡는다고 공급이 늘어나고 물가가 내려가지는 않는다. 9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8.2%를 기록하며 예상치를 웃돈 것을 보면 연준의 조치가 먹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물가 상승률이 (연준 목표치인) 2%를 향해 내려가고 있다고 확신하기 전에는 금리 인하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 멱살을 잡고 “누가 이기는지 한 번 해볼래” 하는 식이다. 그는 이번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6월에야 과소평가했다고 오판을 인정했다. 그가 지금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는 것은 자신의 실수를 지우려는 과잉 반응일 수 있다. 그가 약속한 대로 물가를 잡을 때까지 금리를 올리면 물가는 잡힐 것이다. 대신 그때 경제는 완전히 망가져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 돼 있을 것이다.
한국은행의 연준 따라하기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과는 다르게 가계 부채 폭탄까지 안고 있기 때문에 금리 문제를 더 신중하고 섬세하게 대해야 한다. 한은이 사상 최초로 다섯 번 연속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은 물가 상승과 한미 금리 역전에 따른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공급 부족으로 물가가 오르는데 수요를 억제하는 금리 인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자본 유출 가능성이 낮다는 것은 한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한은은 과거 세 번의 한미 금리 역전 기간에 자본이 유출되는 대신 유입됐다는 자료까지 냈다. 한은이 언질을 준 대로 다음 달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으면 기준금리는 연 3.5%가 된다. 시장에서는 이 경우 주택 담보대출 금리가 연 8%대 중후반까지 갈 것으로 예상한다. 집을 팔아도 대출을 다 갚지 못하는 가구가 이미 38만 가구를 넘어선 상황에서 연말이 되면 파산 가구가 속출할 수도 있다.
한은이 물가를 잡고 자본 유출을 막으려는 것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다. 가계가 길거리로 나앉고 기업이 문을 닫은 다음에도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자위할 것인가. 모든 정책은 부족함도 과함도 없이 딱 필요한 만큼 시행해야 한다. 통화정책은 유리그릇 다루듯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