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지난 2019년 7월 일본의 무역 수출 규제로 촉발된 '노재팬' 운동의 슬로건이다. 일본 여행을 가지 않고 일본 제품을 사지 말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일(對日) 불매 운동으로 당시 한국의 일본 맥주 수입은 전년 대비 80% 이상 급감했으며 ‘불매 1호’ 대상으로 지목된 유니클로는 한국 일부 매장에 대해 폐점 수순을 밟았다.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 또한 크게 감소한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지면서 일본은 한국인에 대한 무사증 정책을 잠정 중단하고 사실상 한국인 관광객의 입국을 막았다.
이후 3년이 흘렀다.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엔데믹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일본은 이에 발맞춰 '엔저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관광객 입국 제한을 폐지하고 한국과의 무사증 관광을 재개했다.
지금은 '가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무색해질 만큼 일본으로 향하는 한국인 관광객의 수요가 쏟아지고 있다.
25일 여행업계에 따르면 하나투어에서 9월 일본 여행 예약률은 전달 대비 무려 625% 증가했으며, 모두투어에서는 증가율이 1200%에 달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는 일본항공의 11~12월 일본행 국제선 예약이 올해 9월 중순과 비교해 3배 수준으로 올랐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국토교통부는 이달 30일부터 김포~하네다 노선 운항 횟수를 28회에서 2배 늘린 주 56회까지 증편할 예정이다.
'사지 않습니다' 또한 사그라들고 있다.
일본 맥주의 수입은 노재팬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최근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일본 맥주 수입량은 1만3198t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20년 6489t보다 103.4%, 지난해 7751t보다 70.2% 증가한 수준이다. 올해 수입액 역시 1027만3000달러(약 147억6230만원)로 2020년 대비 81.2% 늘었다.
주류업계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일본산 주류 수입이 점차 회복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캔맥주가 활발히 판매되는 채널인 편의점 또한 일본 맥주를 속속 들여오는 분위기로, 지난 5월부터는 아사히와 산토리, 삿포로 등 일본 맥주들이 편의점 4캔 1만1000원 행사 품목에 포함됐고, 아사히와 삿포로는 성수기였던 올여름부터 새 광고를 선보이는 등 다시금 마케팅에 착수했다.
노재팬 운동이 시들해진 게 언제쯤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자연스레 국민들의 관심이 옮겨졌다는 견해도 있고, 일부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포켓몬빵'의 열풍을 시작점으로 보기도 한다.
포켓몬빵의 열풍은 대형마트 '오픈런' 현상을 일으키며 사회적인 현상으로까지 번졌다. 포켓몬빵의 흥행으로 SPC삼립은 올 2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롯데제과의 '디지몬빵', 삼양식품의 '츄러스짱구' 등이 띠부띠부씰을 동봉하는 등 캐릭터 상품을 내놓고 있다.
포켓몬빵이 정상가도를 달리고 있을 당시에도 일본 캐릭터 제품에 열광하는 소비자에 대한 비판은 제기됐다. 포켓몬빵을 구입할 때마다 '포켓몬스터'의 저작권을 가진 일본 기업 '더 포켓몬 컴퍼니'에 캐릭터 사용료가 지불된다는 점에서 일본 기업의 수익만 올려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일본에서조차 "포켓몬빵 소동을 보면 노재팬은 이미 과거의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4월 일본 경제매체 '겐다이비즈니스'는 포켓몬빵 인기에 대해 주목하며 "한국에서는 최근 일본 만화 '극장판 주술회전'이 개봉 직후 관객 수 1위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얻고 있다"며 "(포켓몬빵의 인기와 함께) 일본 만화의 뿌리 깊은 인기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통업계에서는 노재팬 운동이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고 보고 있다. 일본 의류 부문에서 불매운동의 집중 타깃이 됐던 유니클로의 실적 역시 회복세에 들어서, 한국에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의 지난 회계연도(2020년 9월 1일~2021년 8월 31일) 영업이익 또한 529억원으로 흑자전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