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로 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각종 재난·사고에 실시간으로 대응해야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참사 발생 4시간여가 지난 뒤에야 가동된 것으로 확인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차원의 재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줄곧 제기됐지만 이번 참사에서도 정부 차원의 일원화된 창구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던 피해자의 첫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15분께다. 이후 소방과 경찰이 속속 현장에 도착하며 사고 수습에 나섰지만 중대본이 가동된 시점은 다음 날인 30일 오전 2시 30분으로 확인됐다. 사고 발생 4시간 15분 뒤에야 중대본이 본격 가동됐다는 얘기다.
행정안전부는 매일 홈페이지에 국민 안전 관리 일일 상황 보고서를 게재한다. 매일 발간되는 보고서에는 하루 동안 발생한 산불·화재·태풍·폭설·폭우 등의 내용이 담기고 각종 재난이나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별도의 대처 상황 보고서가 발표된다. 이날 이태원 참사 보고서가 올라오기 직전에는 충남 괴산군에서 발생한 지진 대처 상황 보고서 3개가 잇따라 올라왔다.
중대본 가동이 30일 오전 2시 30분이었음에도 행안부는 이태원 참사 대처 상황 보고서를 30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발표했다. 통상 대형 재난·사고 발생 시 오전 6시와 11시, 오후 6시와 11시 등 하루 네 차례 대처 상황 보고서가 발간된다. 이태원 참사가 주말인 토요일 저녁 늦게 일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후속 대응이 늦었다는 얘기다.
재난 컨트롤타워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참사 직후 119 구급대와 보건복지부 관할 15개 재난의료지원팀(DMAT)은 부상자 80여 명을 응급 병상 20여 개를 갖춘 순천향대서울병원으로 집중 이송했다. 정부는 구체적인 환자 이송 상황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참사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에 응급 환자가 몰리면서 효율적인 환자 이송이 이뤄지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119 구급대와 의료지원팀이 순식간에 섞이면서 어디로 환자를 이송해야 할지 몰라 중간에 회차하거나 순천향대서울병원에 갔다가 다른 병원으로 다시 이동했다는 관계자들의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컨트롤타워가 주도적으로 부상 정도와 응급 상황을 효율적으로 파악해 적재적소에 환자를 이송해야 했지만 주먹구구식으로 환자를 이송하면서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서의 한 관계자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응급 치료를 요구하는 부상자가 워낙 많아 구급 차량이 도착하는 대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며 “막상 병원에 도착하니 병상이 없어 인근 병원으로 이동하느라 10분 이상을 도로에서 허비해야 했다”고 말했다.
경찰청과 소방청을 외청으로 둔 행안부가 대형 참사를 앞두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못했다는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행안부는 수많은 논란 끝에 경찰국을 출범시켰지만 정작 이번 참사를 둘러싼 경찰의 대응을 놓고 국민들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용산소방서가 신고 접수를 받고 바로 소방청 차원에서 대응에 나선 반면 용산경찰서는 서울경찰청에 기동대 출동을 2시간여 후에 요청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경찰청 내부에서도 행안부에 경찰국이 신설되고 나서 오히려 컨트롤타워가 실종됐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현장에 투입된 경찰관의 보고 사항을 바탕으로 신속한 지휘 체계가 발동됐다면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당일 진행된 시위 및 집회에 신경을 쓰느라 10만 명 이상이 모인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대응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