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안덕근 통상본부장 "FTA 넘어서는 경제영토 절실…중동·남미·동유럽 개척에 올인"

[서경이 만난 사람]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대담=이상훈 경제부장

에너지·통상·산업기술 함께 가는 전략이 필요한 시기

성장성 높고 자원 풍부, 원전·방산 등서 기회 찾을 것

脫중국 투자자 잡고 아세안과도 디지털경제협정 추진






“미중 패권 다툼 이후 글로벌 통상 질서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고 배타적 경제 블록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유무역협정(FTA)을 넘어서는 ‘경제 영토’ 확보에도 힘써야 합니다. 인플레이션과 잇따른 미국의 초긴축 등으로 내년 세계 경제가 어려울 가능성이 크기에 더 그렇습니다. 무역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고유가로 돈을 버는 중동,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남미 등 신시장 발굴에 더 공을 들일 필요가 있어요.”
4일 서울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만난 안덕근(사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990년대 초 냉전 체제가 끝난 뒤 세계화와 자유무역 속에서 성장해온 우리에게 현재의 역내 질서 재편은 위기이자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다른 나라가 벽을 높인다고 우리도 문을 닫으면 안 된다”며 “수출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물류와 통상의 교차로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 자본과 사람이 모이는 ‘투자 허브’가 돼야 한다”고도 했다.

미국과의 경제·안보 동맹 강화, 공급망 다변화 속에서 중국발 리스크 최소화 등은 우리 경제 앞에 놓인 도전 과제다. 통상 정책을 총괄하는 안 본부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안 본부장은 “자유무역은 시들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같은 무역 장벽은 높아지고 있다”면서도 “무역 강국으로서 그간 현실적 제약 조건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신시장을 공략해 이런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본부장이 주목하는 지역은 중동과 동유럽·남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해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오만·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 등 걸프협력회의(GCC) 6개 회원국은 2026년까지 1조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올해 경제성장률 역시 6.5%로 지난해 나왔던 올해 전망치보다 2배 이상 높다. 안 본부장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구매력이 늘어나는 지역이 중동”이라며 “화석연료에 집중하던 이들 국가가 최근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전환, 방산 육성 등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 같은 산업 전환에서 한국의 역할이 클 수 있다”고 봤다.

최근 원전 수출, 방산 협력 등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동유럽도 마찬가지다. 비셰그라드그룹(헝가리·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시장은 우리나라가 유럽연합(EU) 시장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다. 안 본부장은 “최근 폴란드·체코·헝가리의 넘버원 투자국이 바로 한국”이라며 “원전 수출에 맞춰 전력망도 함께 진출하고 더 나아가 이들 지역을 수출기지화하는 모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에너지와 통상·산업기술이 함께 가는 산업통상전략이 절실한 시기가 됐다”며 “이 같은 모델이 동유럽뿐 아니라 중동·남미와도 잘 맞는다”고 설명했다.



그간 교착 상태였던 우리와 GCC 간 FTA 협상이 최근 다시 시작되는 등 분위기도 살아나고 있다. 안 본부장은 “사우디의 관세가 5%인데 이 5% 때문에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이제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롭게 전기를 만들 필요가 커졌다”고 말했다.
안 본부장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도 비슷한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고 했다. 미국이 환태평양동경제반자협정(TPP)을 건너뛰고 IPEF로 넘어간 것처럼 한국도 FTA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대안으로 다른 형태의 경제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 본부장은 “FTA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다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무역투자촉진협의체 등의 형태로 대화할 수 있는 창구를 개설하고 중동·남미 등에 희귀 자원 등을 확보할 수 있는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며 “남미 시장의 경우 한국과 메르코수르(MERCOUSR·남미공동시장) 간 FTA를 맺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치한 측면이 있는데 보다 더 실용적이고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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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간 반도체 전쟁에 따른 국내 기업의 피해 최소화도 안 본부장이 각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다. 안 본부장은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공장에 1년 동안 미국 정부에 대한 허가 신청 없이 반도체 장비를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과 관련해 “1년간 규제 적용 유예가 아니라 (수입을 위한) 기준에 부합하는 만큼 1년간 포괄적으로 승인을 해준 것”이라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정부와 기업이 (중국 내 공장 유지 문제 등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안 본부장은 반도체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사실 미중 간 반도체 전쟁의 시작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이 아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라며 “오바마 전 대통령 임기 후반인 2015년부터 대중 무역 제재 조치의 뼈대를 이루는 법안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중 갈등은 민주당·공화당의 문제가 아닌 만큼 정권과 관계없이 양국 간 갈등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자동차 업계를 강타한 IRA 역시 문제를 파고들어가면 미중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북미 내에서 최종 조립되고 배터리 광물 중 일정 비율 이상이 미국 또는 FTA 체결국에서 채굴·가공됐으며, 배터리 부품 중에서도 일정 비율 이상이 북미에서 제조·조립된 친환경차만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IRA상 전기차 세액공제 규정의 골자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EU에서 차별 조항이라며 반발했지만 중간선거를 코앞에 둔 미국 정치권은 묵묵부답이다. 안 본부장은 “분명히 미국 행정부도 한국의 문제 제기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해결에 양국이 공감하지만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기인 만큼 아직 비공개로 실무 협의만 진행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안 본부장은 미중 갈등과 별개로 중국 시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정부는 곧 중국과 장관급 투자협력위원회를 재개할 예정이다. 중국 측의 제안에 따른 것으로 한중 간 통상장관협의체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안 본부장은 “양국 간의 경제통상 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빠르게 인지하고 풀어나갈 수 있도록 관련 체계를 만들고 있다”며 “몇 개월간의 협의를 거쳐 본격 출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 본부장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우리 산업의 과도한 중국 의존에 대해 ‘양날의 칼’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대중 무역수지가 흑자와 적자를 번갈아가며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역시 우리나라에 대한 의존성이 크다는 뜻”이라며 “한국 시장이 중국의 성장을 이끌었고 중국 시장 역시 한국의 성장에 기여한 만큼 양국 관계의 안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기회에 “한국을 아시아의 투자 허브로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서구 기업이 불확실성 때문에 탈중국을 결행하고 있는 만큼 이런 기업이 한국을 투자처로 주목하게끔 유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네덜란드 노광 장비 업체 ASML 등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한국에서 연구개발(R&D) 투자에 나섰고 전기차 분야에서는 솔리드에너지시스템이 차세대 배터리 R&D센터를 구축 중이다. 안 본부장은 “우리나라는 부지런하고 교육열이 높은 데다 지식재산권 보호도 잘되는 선진국”이라며 “아시아 투자를 고려하는 기업 중 싼 임금을 찾는 곳은 베트남이나 인도로 가겠지만 R&D 등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하려는 기업은 한국으로 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이 한국으로 들어와야 하는 만큼 국내 환경이 더욱 세계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국제표준에 맞춰 노동·규제 문제를 풀 필요가 있다. 안 본부장은 “전 세계 주요국 가운데 구글맵과 우버가 되지 않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이런 규제들이 기술에서 호환성을 떨어뜨리고 글로벌 시장과의 단절을 만든다”고 꼬집었다.

안 본부장은 특히 플랫폼 기술과 제조업의 결합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정부는 11월 중하순에 한국·싱가포르 디지털동반자협정을 공표할 계획이다. 안 본부장은 “동남아국가연합(ASAN·아세안) 전역에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확보한 싱가포르의 대규모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반도체 제조 회사가 결합하는 방식”이라며 “이번 협정을 시작으로 조속히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싱가포르·칠레·뉴질랜드 참여) 가입 협상을 마무리하고 인도네시아·아세안과도 디지털경제협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He is…

△1968년 대구 △대구 덕원고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학사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 박사, 로스쿨 JD △2005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2013~2019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 위원 △2019~2021년 국제공정무역학회 회장 △2020년 25대 한국국제통상학회 회장 △2022년 5월~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정리=우영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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