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 정영현 생활산업부장

봉화 광부 생환은 기적 아냐

평소 숙지한 매뉴얼 빛난 덕

안전 사고 빈번한 대한민국

매뉴얼 숙지·실행 훈련해야





생환고토(生還故土). 지난 주말은 ‘살던 곳으로 살아서 돌아온다’는 뜻의 네 글자에 담긴 간절함과 반가움, 그리고 고마움을 절감한 시간이었다. 10월 29일 밤 서울 한복판에서 살려달라 외치다 스러져간 청춘들의 죽음에 분노와 미안함,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그날 참사에 이틀 앞서 전해졌던 경북 봉화 광산 매몰 사고 소식에 마음을 쓰던 터였다. 행여 광부 두 명의 실종 소식이 초대형 참사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기다린 이들의 반가움이 커서였을까. 광부들의 생환 소식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회자됐다. ‘기적’이라는 단어가 단짝처럼 따라붙었다. ‘기적 같은 생존’ ‘221시간의 기적’ ‘믹스커피의 기적’ 등과 같이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직접 축하 카드를 보냈다. 그런데 광부들의 생환을 그저 기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할까.



광산 사고 후일담에서 방점을 찍어야 할 단어는 ‘기적’이 아니라 ‘매뉴얼’이다. 지침서나 안내서, 설명서 등의 단어로 치환될 수 있는 매뉴얼은 특정 시스템이 제대로, 정확하게 작동해야 하는 우리 사회 모든 곳에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안전사고 예방이 중차대한 곳에서 매뉴얼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봉화 사고 현장 구조팀장의 말처럼 광부들은 “경험과 매뉴얼을 토대로 침착하게 대피해서 안전하게 발견”됐다. 갱도에 고립됐을 때를 대비한 매뉴얼이 이미 존재했고 광부들은 이를 평소 숙지하고 있었으며,사고가 발생하자 기억하고 있던 매뉴얼을 실천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매뉴얼에 따라 공기가 들어오고 물이 흘러나오는 쪽으로 이동 대피했고 고립 후 공간을 최대한 확보했으며 비닐과 마른 나무를 이용해 바람을 피했다. 물론 행운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매뉴얼의 존재와 숙지, 실행이라는 단단한 3단계 구조가 광부들의 생환에 핵심 역할을 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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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고였지만 매뉴얼 덕에 많은 이들이 목숨을 구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나 사고 당시 매뉴얼을 준수한 승무원들 덕분에 많은 탑승객이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다. 2016년 경남의 한 중학교 체험 학습 버스단은 9중 추돌 사고를 당했지만 안전벨트 착용, 대열 운행 금지, 사전 경찰 호송 요청 등의 매뉴얼을 철저히 지킨 덕에 인명 피해를 면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니, 화가 치밀게도 그렇지 못한 사례가 더 빈번히 발생했고 이는 2022년에도 넘쳐났다. 1월 광주 아파트 건설 현장 붕괴, 3월 울진·삼척 산불, 8월 강남역 폭우 침수, 9월 포항 태풍 침수와 대전 유통 시설 화재, 10월 평택 제빵 공장 노동자 사망, 이태원 핼러윈 대참사 등 자연 재난과 인재가 뒤섞여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줄줄이 앗아갔다. 심지어 칼럼 작성 전날에도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열차 기지에서 차량을 정리하던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고 무궁화호 탈선 사고로 30여 명이 부상했다.

신이 아닌 인간의 영역에서 모든 사고에 100% 대비하고 100% 안전을 담보하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대신 그렇기에 최대한 100%에 수렴하기 위한 노력은 더 철저하고 더 처절해야 한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고에 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모든 사건, 모든 피해가 억울하기에 철저한 수사와 처리가 필요하다. 더 중요한 건 도처에 필요한 매뉴얼의 수립과 재점검, 숙지와 훈련이다. 캐비닛 속 먼지 쌓인 문서가 아니라 각자의 공간에서 습관처럼 갖고 있는 필수 지침이어야 한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록 중 한 줄을 떠올려본다. 극도로 어려운 순간 다가오는 기적의 순간은 결코 갑자기 들이닥치는 우연의 부산물이 아니다. 우리가 평소 행해온 모든 노력과 만반의 준비, 즉 필연의 결과물임을 다시 한번 단단히 머리와 가슴에 새겨야 한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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