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것입니다. 미국 대외 정책의 핵심인 중국 정책을 놓고 양당이 치열하게 경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워싱턴 정가 관계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하원 권력을 공화당에 빼앗기면서 대중 견제 등 대외 정책을 둘러싼 미국 내 주도권 다툼이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등 동맹국의 거센 반발을 산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비롯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바이든 정부의 통상 정책을 둘러싼 논란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년간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한 어젠다에 줄줄이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공화당의 정책 행보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9일 미국 주요 언론과 워싱턴 정계 인사들에 따르면 이번 중간선거 이후에도 ‘대중 견제’라는 미국 대외 정책의 큰 방향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보다 강력한 대중 견제를 주문해온 공화당이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문제 삼으며 차별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입법권과 예산권·조사권을 갖는 미 하원은 행정부의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공화당의 하원 장악으로 국내 정책 추진에 제동이 걸린 만큼 대통령의 영역인 외교 분야에 집중하며 공화당과 대립할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의식한 양당의 이 같은 움직임 속에 향후 2년간 미중 관계가 요동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 정가의 한 인사는 “이번 선거를 통해 미 정치권은 2년 뒤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이 힘들 것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라면서 “공화당이 철저히 대선 시계를 바라보고 움직일 것이며 이를 위해 대중 정책의 선명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베이징과 워싱턴 간의 관계는 더욱 불확실해지고 악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하원의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코로나19의 기원을 비롯해 중국의 기술 탈취 문제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예고한 상태다. 하원 외교위원장으로 유력한 마이클 매콜 의원도 수출규제 등의 분야에서 강력한 입법을 통해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매콜 의원은 특히 미 상무부의 대중 수출규제가 너무 느슨하다고 줄곧 지적해온 인물로 그가 하원 외교위원회를 장악할 경우 우리 기업들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국내 대기업의 한 인사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규제에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다행히 상무부의 예외 적용을 받았으나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면 향후 예외 적용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산 전기차 차별 문제가 불거진 IRA의 경우 의회 정치 구도상으로는 법 개정이 쉽지 않지만 공화당이 어떤 식으로든 개정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법안을 민주당이 독단적으로 추진해 공화당의 불만이 매우 높았던 데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표적인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법안 내용만 봐도 국세청 징세 강화 등 공화당 정책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부분이 많다. 앞서 매카시 원내대표는 다수당이 되는 첫날 IRA 관련 예산을 폐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외교 당국자는 “민주당 입장에서 IRA를 개정하기 쉽지 않고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도 여전히 살아 있다”면서도 “유럽·일본·한국은 물론 미국의 자동차 업계와 민주당 내부에서도 문제 제기가 이뤄지는 상황이어서 공화당의 하원 장악과 맞물려 IRA 개정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IPEF 역시 향후 험로가 예상된다. IPEF는 도널드 트럼프 정권 당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던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확장에 맞서기 위해 새롭게 내놓은 구상이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중국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을 통해 역내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느슨하고 모호한 IPEF로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원 세입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케빈 브래디 의원은 “전 세계에서 중국의 경제적 공격성을 고려할 때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모라토리엄은 미국 경제에 타격을 입히고 전 세계적으로 우리의 영향력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만 미국 내 유권자들 사이에서 FTA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아 공화당이 선택할 통상 정책은 아직 유동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 외교 당국자는 “자유무역에 반대해온 트럼프식 공화당과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전통적인 공화당 사이의 조정이 이뤄지겠지만 어떤 정책이든 대선에 유리한 쪽으로 설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