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사는 크리스틴 씨는 “나에게 큰 힘이 됐고 용기를 줬다”고 말했다. 아니카 씨는 “전화 대화를 통해 많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며 “항상 말을 걸어준 콘스탄즈 씨에게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런 감사 인사는 디지털 헬스케어 앱(app)을 통해 원격 상담을 받은 사람들이 전한 것이다. 정신건강 질환과 만성질환을 겪는 사람들이 스마트폰 앱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기록하고 꾸준한 상담을 받으며 병을 관리하는 독일의 이야기다.
독일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된 앱을 통한 건강 관리가 가능해진 것은 2019년 12월 디지털 헬스케어법(DVG)이 발효되면서다. 이 법은 디지털 헬스케어 앱을 법정 건강보험의 급여목록에 포함하시킬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앱이 정부 심사를 거쳐 디지털 건강앱(DiGA) 목록에 등재되면 보험 수가가 적용돼 앱 이용료가 결정된다.
3일(현지 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DiGA를 살펴봤다. 주로 질병에 대한 후유증, 그 중에서도 특히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데 쓰이고 있었다. 앱의 종류는 다양했다. 독일 시민들은 우울증 치료앱 ‘젤파피(Selfapy)’, 불면증 치료앱 ‘좀니오(Somnio)’, 공황장애 치료앱 ‘벨리브라(Velivra)’ 등을 포함한 정신질환부터 당뇨와 우울증 치료앱 ‘헬로베터(HelloBetter Diabetes and Depression)’ 등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DiGA를 이용할 수 있었다. DiGA를 이용한다는 한 프랑크푸르트 시민은 “꾸준히 상담을 받으면서도 보험 수가가 적용되니 비용 부담이 적어 좋았다”고 말했다.
앱을 사용하기 위해선 먼저 의사 또는 심리치료사가 DiGA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처방이 필요하다. 의사의 처방전에 적힌 DiGA코드를 입력하면 앱을 사용할 수 있다.
정신질환의 경우 앱에 접속하면 일기를 쓰듯 개인의 상태를 기록할 수 있다. 불면증의 경우 수면의 질은 어땠는지, 우울증은 현재 자신의 기분이 어떤지 등을 매일 매일 적어나간다. 당뇨병, 고혈압, 생활 관리 앱은 주로 자신의 생활 패턴을 기록한다. 하루 식사량, 운동량, 혈당 등을 데이터로 만들어 의사들이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의사들은 이용자들의 심리·건강 상태를 기록한 데이터를 확인한 뒤 적절한 처방을 한다. 우울증·불면증·당뇨병·고혈압 등의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질환들은 의사들이 지속적으로 환자를 상담한다. 대면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병원에 내원하라고도 권한다. 앱 이용료는 질환의 종류에 따라 다른데 기본적으로 앱 개발사와 정부 간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공황장애 관리 앱 벨리브라의 건보 수가는 한화 약 65만 원이고 불면증 관리앱 좀니오의 수가는 90일 기준 한화 약 31만 원이다.
독일 법정건강보험협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헬스케어 앱이 DiGA에 등재된 이후 1년 간 총 5만 건의 앱이 처방됐다. 대부분 의사와 심리치료사가 처방했으며 총 소요 보험 재정은 한화 약 180억 원 수준이다. 독일의 DiGA는 병원 중심 의료체계를 환자 중심으로 전환한 새로운 치료 방식이란 평가를 받는다.
한국에서도 독일과 유사한 제도가 이른 시일 내에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독일의 DiGA는 한국의 디지털치료제(DTx)와 같은 맥락”이라며 “현재 식약처에서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제품들이 있는데 허가가 나면 보험 수가 적용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DTx를 활용해 환자들이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면 현재 보험 재정을 걱정할 단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