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가구·인테리어 업체 한샘(009240)이 최근 고난의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 3분기 영업손실 136억 원을 기록하며 전분기 대비 적자전환 했고 주가도 연초 9만 원대 대비 반토막 난 4만 원대 초중반까지 밀리면서 주주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는데요. 한샘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 매출액이 2조2312억 원, 영업이익이 693억 원 수준으로 준수한 회사였죠. 그러나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불과 1년 사이 실적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습니다.
작금의 위기를 타개할 한샘의 선장은 김진태 대표입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그를 지난 9일 한샘 상암 사옥에서 만났습니다. 김 대표는 안팎에서 급격히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온라인 사업 비중 확대와 비용 효율화를 한샘의 주요 과제로 꼽았습니다. 이를 위해 회사가 보유 중인 서울 상암동, 방배동 사옥을 매각해 인수·합병(M&A) 재원을 확보한다는 전략도 밝혔죠.
서울경제 시그널은 이런 내용을 담은 기사를 지난 10일 보도하기도 했는데요.([단독]한샘 "사옥 매각해 미래 투자 재원 확보") 이 기사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 한샘 주주 여러분과 회사 관계자들께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그는 외부에서 한샘을 경영 위기, 유동성 위기의 회사로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부 상황은 심각한 위기를 느낄 정도가 아니다. 한샘은 '넷 워킹 캐피탈'(Net Working Capital·순운전자본)이 매우 좋은 회사다. 매출채권도 적은 편이다. 재고를 쌓아 둘 필요가 별로 없어 영업하기에 유리한 조건이다.
순운전자본이란 기업이 일상적으로 영업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운영 자금을 뜻합니다. 기업은 물건을 팔기 위해 재고를 둬야 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소비자에게 팔아 돈을 벌게 되죠. 그런데 한샘은 경쟁사 대비 온라인 몰이 잘 갖춰져 있고, 전국에 대리점도 많아 이 부분에서 상당히 좋은 회사라는 말이었습니다. 재고를 많이 쌓아두지 않을테니 적자가 커지는 상황을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으로 보입니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어려운 시장이 오면 오히려 기회가 많아진다. 경쟁사가 힘든 상황을 고려해 이럴 때일수록 신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격차를 벌려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대표가 펼치려는 신사업은 온라인으로의 체질 전환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샘의 주요 영업 방식은 대형 전시장을 내고 고객들이 알아서 찾아오게 만든 뒤, 상담을 통해 계약을 따내는 것에 불과했던 게 사실이죠. 주택 경기가 활황일 때는 이 같은 전략이 통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고객에게 직접 찾아가 제품도 팔고 인테리어 시공을 설득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입니다. 김 대표는 이런 상황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년 2월 한샘의 신규 애플리케이션을 론칭하고 웹사이트도 개편할 예정이다. 그동안 하지 않던 광고도 집행해 한샘 브랜드를 리뉴얼하겠다. 고객에게 직접 다가가는 전략을 취하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전국의 대리점 수를 늘려 온라인에서 흡수하는 고객들을 오프라인에 연결시킨다는 구상"이라며 "수천에서 수억원이 드는 인테리어 시공은 온라인에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온라인 상에서 소비자를 더 유치하기 위해서는 깔끔한 디자인의 사용자 환경(UI)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한샘은 요즘 정보통신(IT) 개발자 구인에 한창이라고 하는데요. 김 대표는 그러면서 "온라인에서 시너지를 낼 기업이나 다양한 스타트업 인수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오늘의집' 같은 회사는 이 분야에서 상당히 잘 된 사례"라고도 언급했습니다.
오늘의집은 새롭게 인테리어 된 집을 온라인에 소개하고 여기서 다양한 사업 기회를 엿보는 국내 대표 프롭테크(부동산+기술) 플랫폼입니다. 그의 언급에서 한샘도 프롭테크를 통해 집과 인테리어 사업을 이어줄 어떤 '연결고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실제 한샘은 오늘의집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죠.
김 대표가 또 주목하는 분야는 건자재 쪽입니다. 최근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사실은 독자 여러분도 많이 알고 계실텐데요. 한샘은 좋은 자재를 최대한 싸게 사들여 시공하면 그만큼 영업이익률이 높아지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 분야에서 높은 효율을 추구하겠다는 뜻이었죠.
김 대표는 "외부 컨설팅을 받았는데 구매와 물류 분야 효율화를 이루면 연간 200억 원 가량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건자재 기업 인수도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있다. 롯데케미칼(011170)에서 공급하는 소재도 공급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롯데는 IMM 프라이빗에쿼티(PE)와 함께 올 초 한샘 경영권을 인수한 전략적투자자입니다. 한샘이 롯데케미칼로부터 좋은 원자재를 좋은 가격에 공급 받을 수 있어 유리해졌다는 점을 그는 알리고 싶어 했습니다.
많은 신사업 기회를 엿보고 있는 한샘이지만 현금 보유고는 많지 않습니다. 올해 상반기 기준 한샘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94억 원에 불과합니다. 당분간 적자가 지속되면 유동성은 더 말라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 대표의 이런 신사업 구상은 어떤 재원으로 충당해야 할까요?
부동산 매각입니다. 한샘은 서울 상암동과 방배동에 두 개의 사옥을 갖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상암동 사옥의 매각가로 최대 3500억 원, 방배동 사옥은 1000억 원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사옥 매각 성공을 전제로 "4000억 원을 확보해 향후 경영 활동에 활용하고 신규 투자 재원으로도 쓰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최근 자본시장에서는 한샘 주주와 대주단이 대출 조건을 놓고 협상이 한창입니다. 올해 1월 IMM PE가 한샘 최대주주가 되면서 인수금융 대출을 받았는데, 주가가 급락하면서 주가 대비 대출 비율이 너무 높아진 영향입니다. 일각에선 한샘이 사옥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자사주를 취득하는 등 LTV를 낮추려는 게 아닌가 예상도 했지만 김 대표는 이와 관련해 다소 선을 긋는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 빠른 흑자전환에 대한 의지도 보여줬습니다.
“한샘은 소유와 경영이 완벽히 분리된 구조다. 우리는 인수금융 대주단과의 협상에는 신경 안 쓰고 경영에만 집중하면 된다. 현금이 확보되면 차입금 상환보다는 경영 활동과 신규 사업 투자에 쓸 계획이다. 내년 하반기 쯤 주택 경기 살아나게 되면 한샘도 조심스럽게 흑자 전환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김 대표의 임기는 앞으로 2년여가 남은 2025년 1월까지 입니다. 그가 이번 인터뷰에서 밝힌 구상은 그의 임기 내 어느 정도는 실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샘이 어느 때보다 큰 변화 앞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