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관련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정상이 약 4개월 만에 다시 머리를 맞댄 것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높아진 것이 가장 컸다. 북핵 위협이 커질수록 3국 공조 역시 유례없이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탓이다. 나아가 안보를 핵심 키워드로 다룬 이번 정상회담이 아세안에서 개최됐다는 점에서 역내 영향력 증대를 꾀하고 있는 중국을 향해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를 과시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약 15분간 회담했다. 6월 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4년 9개월 만에 만났던 3국 정상이 다섯 달이 채 지나지도 않아 다시 모인 것이다.
세 정상은 한목소리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규탄했다. 가장 먼저 모두발언을 한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과 핵 위협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기시다 총리가 “북한에 의한 전례 없는 도발이 이어지고 있다”며 “오늘 이렇게 한미일정상회담이 개최된 것을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2일 북한이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일을 언급하며 “우리 국민이 (10·29 참사로) 슬픔에 빠져 있는 시기에 이런 도발을 감행한 것은 김정은 정권의 반인도주의적이고 반인륜적인 성향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담은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할 시 강력하게 제재할 것이라는 한미일 공조 입장을 재확인하며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내는 성격이 강하다. 이미 한미는 3일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미군의 전략 자산을 상시 배치 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 향후 북한 핵·미사일 개발 자금원을 차단하기 위한 돈줄 옥죄기 공조 역시 한층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지난달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는 유선 협의를 통해 북한의 핵 개발을 단념시키기 위해 암호화폐 탈취 등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자금 조달을 차단하는 노력을 높이기로 합의했다. 한미일 3국 전력이 참여하는 합동훈련도 더 빈번하게 실시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강력한 수준의 한미일 공조를 예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미일 3국 협력이 한반도 주변에서의 안보 협력을 넘어 지역 동맹 성격으로 발전을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미일 안보 협력의 초점은 기본적으로 북한에 맞춰져 있다”면서도 “한미일 안보 협력이 지역 안보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미일 공조에 대해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지속적인 안보 전략의 일환”이라며 “아시아에서는 미국과의 양자 안보 관계가 중심이고 동맹 간 안보 관계는 사실상 없다시피 했는데 이제 미국이 아시아에서도 동맹 간의 긴밀한 공조를 강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중국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아세안에서 회담이 열린 만큼 한미일이 나토와 비슷한 역내 다자 안보 체제를 형성하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앞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한미일 정상회담에 대해 “역내 전반적인 평화와 안정을 강화하기 위해 3국이 협력하는 역량까지 더 넓게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 등을 두고 인태 지역에서 중국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한미일 협력을 통해 대중국 견제를 강화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한미일 공조와 관련해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다자회의·정상회담 때마다 북한 도발 시의 국제사회 공조를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리커창 중국 총리와의 환담 자리에서도 북한 도발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다만 리 총리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하겠다”는 원칙론 입장을 재확인했다.